‘시스터 술자 모멘트’(Sister Souljah moment)라는 정치용어가 있다. 시스터 술자는 미국의 유명한 여성 흑인 래퍼다. 1992년 미국 대통령선거 때의 일이다. 그해 3월 로드니 킹 사건으로 촉발된 로스앤젤레스 흑인 폭력시위로 흑백 갈등이 선거 쟁점으로 떠올랐다. 과격 흑인운동가이자 힙합 가수인 시스터 술자는 <워싱턴 포스트> 인터뷰에서 ‘(흑인들의 폭력행위가) 현명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 흑인은 매일 흑인을 죽이는데, 한 주 정도 백인을 죽이는 게 왜 안 되는가. 로스앤젤레스에서 갱단 폭력으로 매일 흑인이 흑인 손에 죽는다. 흑인이 흑인을 죽이는 건 괜찮고, 흑인이 백인을 죽이면 문제가 되나? 백인은 우월하기 때문에 죽이면 안 되는가?” 시스터 술자는 격한 비난과 논란에 휩싸였다.
그해 6월 민주당 대통령 후보인 빌 클린턴은 흑인 민권운동가 제시 잭슨 목사가 주최한 행사에 참석해 시스터 술자를 정면 비판했다. 클린턴은 “만약 그 발언에서 ‘백인’과 ‘흑인’을 뒤바꾸기만 하면, (미국의 극우 백인 우월주의자인) 데이비드 듀크의 연설과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제시 잭슨을 비롯한 흑인 참석자들이 클린턴을 맹비난한 건 물론이다.
클린턴의 발언은 면밀하게 준비된 것이었다. 흑인 행사에서 흑인 강경파를 비판함으로써 반발에 부닥쳤지만, 그 대신에 당내 온건파와 중도층의 마음을 얻었다. 젊은 시절 베트남전 징집을 거부했던 클린턴에 대해 ‘너무 진보적이 아닌가’란 의구심이 있었는데 이걸 계기로 말끔히 의심을 해소할 수 있었다. 클린턴은 그해 11월 대선에서 공화당 온건파였던 조지 부시 시니어 당시 대통령을 꺾었다.
당내 강경파의 반발을 감수하고라도 과격한 행동을 강하게 비판하는 것, 그럼으로써 다수 유권자의 지지를 얻는 순간을 ‘시스터 술자 모멘트’라 부른다. 모든 정치인에겐 이런 선택의 시간이 온다. 그때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정치적 운명을 좌우한다.
박찬수 논설위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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