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최근 영화 <극비수사>에도 나온 ‘광주극장’은 올해 꼭 개관 80년을 맞은 곳이다. 호남지역 첫 조선인 자본 극장으로 1935년 광주 충장로 지금 자리에 문을 열었다. 복층 구조의 856석 이 단관극장엔 지정석도, 영화 시작 전 광고도 없다. 극장 밖엔 손으로 그린 영화 간판이 걸려 있다. 수요영화모임 같은 자생적 관객모임이 꾸준하고, 극장 안집을 리모델링한 ‘영화의 집’은 지역 커뮤니티의 문화공간이 되고 있다. 상업성만 있으면 예술영화도 멀티플렉스에서 주로 소비되는 요즘, 여전히 자신의 ‘속도’와 ‘취향’대로 영화를 보고픈 이들은 광주극장을 찾는다.
19년째 여기서 일하는 김영수 전무는 요즘 고민이 깊다. 얼마 전 영화진흥위원회가 일방적으로 확정한 ‘예술영화 유통·배급 지원사업’ 탓이다. 2002년부터 예술영화 전용관 지원 대상이던 광주극장은 이제, 영진위 위탁업체가 선정한 한국 예술영화 48편 가운데 매달 2편 이상을 주말 내내 또는 주중 프라임타임에 틀어야 연간 4700여만원을 받을 수 있다. 관객들의 특성과 관람 행태를 고려해 각자의 색깔로 자율적으로 운영했던 예술영화 극장들이 ‘영진위 대여관’으로 전락한다는 자조가 나온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사업이에요. 올해는 지원 없이도 그럭저럭 버틸 수 있겠죠. 하지만 내년, 내후년에도 극장이 지속가능할지….”
#2. 영화의 도시 부산에서도 대연동 ‘국도예술관’은 은근히 입소문이 난 곳이다. 100석 남짓 단관이지만 알뜰하게 하루 7회차까지 상영해 “멀티플렉스 아니냐”는 농담도 듣는다. 알찬 기획전과 지역 단관으로선 이례적일 정도로 잦은 관객과의 대화, 미개봉 다큐영화 정기상영 같은 눈에 띄는 프로그램의 중심엔 정진아 프로그래머의 열정과 발품이 있다.
웹디자이너이던 정씨는 원래 남포동 시절 이 극장 관객이었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극장”이라 홍보 디자인 일을 도와주던 그는 2008년 극장이 대연동 가람아트홀로 이사온 이후 아예 직장을 그만두고 프로그래머가 됐다. “위탁업체가 영화를 선정한다는 건 검열이죠. 접근성이 떨어지는 단관극장들은 무조건 많이 튼다고 관객이 들지도 않아요. 관객들의 욕구를 찾아 포인트를 맞춰 기획·홍보하면 한 회 관객 수가 몇회치와 맞먹을 때도 있죠.” 그래도 영진위의 지원 없이는 당장 극장의 생존 자체가 쉽지 않다. “몇주간 마음이 너무 복잡했어요. 문 닫을 순 없으니 받아들일 수밖에요. 부당성은 계속 알릴 거예요. 하지만….”
한국 극장가에 예술영화들이 뿌리내리는 데 기여했던 예술영화 전용관들이 최근 이처럼 ‘괴로운’ 선택에 내몰리고 있다. 위탁업체에 1억여원 예산을 안겨가며 나라는 왜 이리도 친절하게 영화까지 골라줄까? 영진위는 “한국 독립예술영화의 안정적 상영을 위해”라 한다. 까놓고 말하자. 요즘 작은 영화 흥행은 멀티플렉스인 씨지브이 ‘아트하우스’가 거느냐 마느냐에 달렸다는 걸 삼척동자도 안다. 특히 지역의 단관 예술극장들이 주요 시간대에 같은 영화만 틀 경우, 그나마 있던 예술영화 관객들이 멀티플렉스로 더 쏠릴 것은 뻔하다. 대기업 극장의 독과점엔 입도 못 열고, 독립영화 전용관도 늘리지 않는 영진위가 엉뚱한 사업에서 생색을 내는데, 실리도 명분도 없다. 수혜 대상이 될 것 같은 한국 독립영화계까지 반대에 나선 것도 그 때문이다.
이러니 정권에 비판적인 작품이나 그런 영화를 거는 극장 지원을 막겠다는 의도로 보일밖에. 영진위는 직영극장 인디플러스의 <다이빙벨> 상영에 제동을 걸고, 가장 열심히 독립영화를 틀던 인디스페이스를 지원사업에서 배제한 바 있다. 영진위 전신인 영화진흥공사는 1970년대 ‘유신이념 생활화와 새마을정신 함양’을 내걸고 반공대작영화를 직접 제작했다. 그때가 그리운가.
김영희 문화부장 dora@hani.co.kr
김영희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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