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기 사회에서 돌도끼는 오늘날 스마트폰과 유사한 만능 도구였다.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 구석기 유적지에서도 발굴된 아슐리안 주먹도끼는 날카롭게 다듬은 양날을 이용해 짐승 가죽을 벗기거나 뼈를 발라내는 데, 또 나무줄기를 자르고 뿌리를 파헤치는 데 요긴하게 쓰였다.
이르 요론트 부족은 오스트레일리아 북부에서 19세기까지 구석기식 삶과 문화를 유지해왔다. 로리스턴 샤프 미국 코넬대학 인류학 교수가 1952년 발표한 <석기시대 오스트레일리아인을 위한 쇠도끼>는 자급자족하며 고유문화를 유지해오던 부족이 도구 하나로 붕괴하는 과정을 세상에 알린 논문이다.
1915년 영국 성공회가 인근에 선교회를 세우고 돌도끼를 쓰는 이 부족에게 쇠도끼를 선물하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돌도끼는 부족에게 가장 요긴하고 귀한 도구로, 돌도끼 제작과 사용권한을 중심으로 사회 위계와 관습, 문화가 만들어져 있었다. 먼 곳의 상인들과 교역을 통해 돌을 구입하고 제작·관리하는 전 과정을 성인 남자들이 도맡았다. 돌도끼는 공동체가 기반한 권위의 상징이자 생활 필수도구였다. 돌도끼를 빌려주고 빌리는 절차에서 정교한 사회체계와 문화가 형성됐다. 선교사들로부터 쇠도끼가 공짜로 제공되어 여자와 아이들도 지닐 수 있게 되자, 큰 혼란이 생겨났다. 백인들은 쇠도끼 덕분에 삶이 개선되길 기대했지만, 원주민들의 삶과 사회는 아노미를 겪게 되었다. 쇠도끼나 새로운 물건을 얻기 위해 아내와 딸의 몸을 팔게 하거나 도둑질이 횡행하는 등 공동체를 지탱해온 질서와 문화가 무너졌다.
구석기인이 손에 쥐게 된 쇠도끼는 사용법과 그 영향을 잘 알지 못한 채 도구에 깊이 의존할 때의 위험성을 알려준다. 기술 발달이 가속화하면서 쉴 새 없이 새 기술과 도구가 생겨나 유혹한다. 기술의 영향이 크고 근본적일수록 그 파장과 변화에 대한 다각적인 논의와 성찰이 동반되어야 도구로 제대로 쓸모를 발휘할 수 있다.
구본권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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