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민족행위자’와 달리 ‘반민주행위자’는 그리 익숙한 말이 아니다. 그러나 반민주행위를 규정하고 이를 처벌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률이 실제로 있었다. 1960년 제정된 ‘반민주행위자 공민권 제한법’은 반민주행위를 “헌법, 기타 법률이 보장한 국민의 기본권을 유린 또는 침해함으로써 민주주의의 제 원칙을 파괴한 행위”로 규정하고, 이들의 피선거권과 선거권, 공무원이 되는 자격 등을 박탈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1960년 이승만·자유당 정권은 3·15 부정선거로 촉발된 4·19 혁명으로 무너졌고, 그 뒤 부정선거 책임자에 대한 처리 등 과거 청산을 위한 혁명입법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강한 여론의 힘으로 이 같은 특별법이 제정된 것이다.
이 법의 가장 큰 특징은 “1960년 4월26일 이전 특정 지위에 있음을 이용하여 현저하게 반민주행위를 한 자”, 곧 ‘지위범’을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개인의 행위에 대해서만 책임을 물으면 거대한 권력 구조의 손발이 됐던 말단 하수인들만 뒤집어쓸 우려가 있다. 이 때문에 근본적이고 광범위한 과거 청산 작업에서는 이처럼 지위에 따른 책임을 묻곤 한다. 우리나라 제헌의회에서 ‘반민족행위 처벌법’을 만들 때에나, 프랑스·오스트리아 등에서 2차 세계대전 뒤 부역자를 처벌할 때에도 같은 원칙을 적용했다.
이에 따라 부정선거 당시 국무위원, 정부위원 등을 포함해 629명의 지위범이 공민권을 제한당했다. 또 ‘현저한’ 반민주행위를 한 1만4000여명에 대해서는 형사처벌을 위한 수사가 시작됐다. 그러나 1961년 일어난 5·16 군사쿠데타는 반민주행위자에 대한 처벌을 포함해 4·19 혁명의 모든 성과를 거품처럼 날려버렸다. 반민족 청산의 기회를 이승만 정권이 날려버렸다면, 반민주 청산의 기회는 박정희 정권이 날려버린 셈이다. ‘국정교과서 도입하자’ 등 이승만과 박정희를 신처럼 떠받드는 세력들이 ‘역사전쟁’을 일으킬 때마다, 미완의 과거 청산을 또다시 곱씹지 않을 도리가 없다.
최원형 여론미디어팀 기자 circl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