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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영국 노동당의 ‘당헌 4조’ / 최원형

등록 2015-09-29 18:32

‘공동소유’라는 말을 담은 당헌 4조는 한때 당원증에 적혀 있을 정도로 영국 노동당의 독자적인 정체성을 드러내어 주는 상징이었다. 당헌 4조의 전체 구절은 이렇다. “육체노동자나 정신노동자가 충분한 근로의 대가와 가장 공정한 분배를 보장받으려면 생산·분배·교환 수단의 공동소유라는 바탕 위에서 모든 산업과 서비스를 대중이 관리하고 통제하는 체제가 확립돼야 한다.” 급진 좌파가 강조할 법한 이 ‘사회주의’ 강령은 1918년 당헌으로 채택됐는데, 무엇보다 이를 주도한 것이 시드니 웹, 아서 헨더슨 등 의회에서 엘리트 중심의 합법적이고 점진적인 사회 개혁을 추구하는 ‘페이비언’ 협회의 핵심 인사들이었다는 점이 이채롭다. 당헌 4조의 탄생 배경에는 1차 세계대전이라는 혼란기를 맞아 급격히 성장한 영국 노동계급의 ‘장외’ 역량이 있었다. 1914~1918년 사이 영국의 노동조합원은 400만명에서 650만명으로 늘었고, 거듭된 파업을 통해 노동계급의 목소리는 정치권을 압박할 수 있는 실질적인 힘을 얻었다. 이런 시대적 흐름의 종합적인 결과물이 바로 당헌 4조다.

그 뒤 당의 역사만큼이나 오랜 논쟁을 겪어온 당헌 4조는 1995년 ‘신노동당’ 노선을 앞세운 토니 블레어에 의해 철회됐다. 블레어는 핵심이었던 ‘공동소유’를 없애고, 그 자리에 ‘역동적인 경제’, ‘사회 정의’와 같은 개념들을 집어넣었다. 블레어와 신노동당 노선을 꾸준히 비판해온 제러미 코빈이 최근 대중의 압도적인 지지로 영국 노동당의 새 대표로 선출되면서, 20여년 만에 당헌 4조에 또다시 새로운 변화가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코빈은 오래된 ‘노동당 좌파’의 전통 위에 서 있는 인물로 분류되지만, 이번 선거에서 20~30대 청년들을 비롯해 새롭게 등장한 풀뿌리 유권자들의 집중적인 지지를 받았다. 질주하는 자본주의에 별다른 제동을 걸지 못했던 ‘제3의 길’이 끝난 자리에서 과연 어떤 당헌 4조가 새롭게 만들어질지 궁금하다.

최원형 여론미디어팀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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