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모더니즘 건축가 르코르뷔지에는 20세기 초 유럽 도시 거리에 대해 불만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는 당시 도시 거리를 ‘당나귀길’로 불렀다. 꾸불꾸불한 것이 당나귀가 제멋대로 걷는 모습을 닮았다며 혹평한 것이다. 르코르뷔지에는 근대건축을 대표하는 ‘국제주의 양식’을 개척한 건축가에 속한다. 그가 선호한 건축 양식은 20세기를 거치며 세계 전역에서 채택되었고, 한국에도 아파트 건물을 비롯해 같은 양식의 건물이 수없이 많다. 그러나 ‘성냥갑 건물’로도 불린다는 사실이 말해주듯이, 국제주의 양식이 사람들의 불만과 지탄 대상이 된 지도 오래다. 반면에 르코르뷔지에가 혹평한 당나귀길은 오히려 정겨운 공간으로 부상했다.
서울 도봉구 쌍문동 골목에 사는 다섯 가족 이야기를 담은 텔레비전 연속극 <응답하라 1988>이 유례없는 시청률을 기록한 이유는 당나귀길의 정겨움으로 시청자의 심성을 자극한 데도 있을 것이다. <응팔>이 배경으로 삼은 1980년대 말은 대도시에도 아직 제 모습을 지닌 골목이 남아 있던 때다. 당시 골목에서 가장 자주 들리던 소리는 아이들이 소꿉친구 이름을 부르며 외치던 “노올자”가 아니었나 싶다. <응팔>의 고등학생 친구들 중 유일한 여성인 덕선이 잠옷 차림으로 친구들 앞에 나타나는 것이 부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 것도 그들과 한 골목에서 코흘리개 시절을 보낸 것으로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골목문화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그런 풋풋한 정경이 연출되기는 어렵다.
하지만 오늘날 도시에서는 골목길이 거의 다 사라지고 말았다. 그나마 남은 곳도 차량통행이 가능한 데는 자동차가 점거해버렸다. 한국의 자동차 등록대수는 1980년에 50만대를 돌파한 데 이어서 1985년에 100만대, 1992년에 500만대, 1997년에 1000만대, 그리고 드디어 2014년에는 2000만대를 넘어선다. 이 결과 자동차가 골목을 접수하게 되면서, <응팔>이 보여준 정겨운 골목 모습은 다시 볼 수 없는 추억과 그리움의 공간으로 바뀌고 말았다.
과거 골목은 공유지였다. 원시적 축적에 의해 자본주의가 발달하기 이전 공유지는 사람들의 생존과 생활 근거지로 사용되곤 했다. 마을 근처 숲이나 강, 또는 여기저기 나 있던 다양한 길들이 그런 곳에 속한다. 공유지의 특징은 어느 개인이 단독으로 독점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골목이 공유지였던 것도 누가 사적으로 소유하지 않아서 사람들이 자유롭게 머물거나 오가며 사용했기 때문이다. 과거 골목은 놀이하는 아이들, 의자에 걸터앉아 담소하는 노인들, 한가로이 지나가는 행인들 모두에게 개방된 곳이었다. <응팔>에 등장하는 아이들, 어른들이 ‘이웃’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대도시의 골목도 한때는 공유지였다는 말이다.
어느 누구의 사적 소유가 아니라는 점에서 골목은 오늘날도 명목상의 공유지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 용도는 크게 바뀌었다고 봐야 한다. 도시 골목은 이제 대부분이 차량 주차나 통행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골목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성격, 모습도 많이 바뀌었다. 이것은 최근 재개발 등으로 골목이 대거 상가로 바뀐 결과이기도 하다. 식당, 커피점, 술집이 들어서서 붐비는 곳일수록 골목은 이제 마을 주민보다는 소비자, 고객, 관광객을 위한 공간이 되고 말았다.
<응팔>이 보여준 골목문화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은 것은 이렇게 보면 자본의 지배가 더욱 철저해진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응당 공유지 구실을 해야 할 골목마저도 자동차 같은 고가 상품이 지배하는 공간, 또 각종 소비생활을 위한 공간으로 바뀐 것은 자본주의가 심화된 결과다. 골목은 이제 ‘사회적 하부시설’로 작용한다. 공동체적 생활보다는 돈 벌고 쓰는 일이 더 중요한 곳이 된 것이다. 사회적 하부시설의 역할은 자본 축적의 조건을 개선하는 데 있다. 그러나 골목이 그런 역할을 맡게 되면서 우리는 소중한 공간 하나를 잃고 말았다.
강내희 중앙대 영문과 교수
※새 칼럼 필자로 참여하는 강내희 교수는 <문화/과학> 발행인, 문화연대 대표,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의장 등을 지낸 대표적인 문화이론가입니다.
강내희 중앙대 영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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