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에 길이 989㎞의 바다가 있다. 이슬람 시아파와 수니파를 대표하는 두 나라는 중동 패권뿐 아니라, 이 바다 이름을 놓고도 싸운다. 이란은 ‘페르시아만’ 이외의 이름을 금지하고 있다. 사우디 등 건너편 나라들은 ‘아라비아만’이라고 쓴다.
2006년 유엔 지명전문가 그룹의 조사보고서는 이 바다가 페르시아와 깊은 관련이 있다고 했다. 아케메네스 왕조의 다리우스 1세(재위 기원전 522~기원전 486) 때 처음 이 바다를 ‘파르스해’라고 했다. 파르스에서 페르시아라는 말이 나왔다. 다리우스 1세는 그리스 정복을 꾀했다가 ‘마라톤’에서 패배한 인물이다. 헤로도토스 등 그리스 역사가들은 페르시아만과 아라비아만을 구분했다. 이란과 아라비아반도 사이는 페르시아만, 아라비아와 아프리카대륙 사이는 아라비아만(현재 홍해)이었다. 근대 해상패권을 장악한 영국도 페르시아만이라 했다.
1950년대 아랍민족주의가 발흥하고, 1960년 시리아 다마스쿠스에서 열린 바트당 회의에서 페르시아만을 아라비아만으로 바꾸기로 한 뒤 아랍 국가들에서 페르시아만이란 표기가 사라졌다.
미국 지명위원회는 페르시아만으로 표기한다. 하지만 미 해군은 1991년 ‘걸프전’ 이후 아라비아만으로 부른다. 미군 기지들이 있는 아랍 동맹국들을 배려해서다. 2004년 미국지리학회는 페르시아만 밑에 괄호를 치고 아라비아만이라고 쓴 지도책을 펴내 이란의 반발을 샀다. 학회는 이후 이를 철회하며 “역사적으로, 그리고 일반적으로 페르시아만으로 알려져 있다. 일부는 아라비아만이라고 부른다”고 설명했다. 미 정부 관리들은 중립적인 ‘걸프’라는 말을 점점 더 자주 입에 올린다. 유엔은 페르시아만으로 표기하고 있다.
황상철 국제뉴스팀장 roseb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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