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3월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가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내세운 명분은 ‘대량파괴무기(WMD) 개발’이었다. 우라늄을 활용한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고, 생화학무기인 탄저균과 사린가스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증거도 제시했다.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가 아프리카 니제르에서 핵연료인 우라늄을 수입하려 했다는 문서가 있다”고 말했다. 중앙정보국 고위 관리들은 “우라늄 농축에 필요한 가스 원심분리기에 사용되는 고강도 알루미늄관을 수입하려 한다”고 언론에 흘렸다.
이렇게 시작한 전쟁은 미국 대통령이 바뀌고도 한참 뒤인 2010년 8월에야 완전히 끝났다. 7년5개월이 걸렸다. 4400명이 넘는 미군이 죽고 전비는 9천억달러에 달했다. 하지만 이라크 전역을 샅샅이 뒤져도 대량파괴무기는 찾지 못했다. 잘못된 정보 때문에 부시 대통령은 수많은 생명을 잃고 재정을 수렁에 빠뜨렸다. 세계 최고라는 미국 정보기관이 어떻게 이런 실패를 할 수 있을까. 2년간 활동한 미 의회의 정보능력평가위원회는 이렇게 밝혔다. “이라크 대량파괴무기 정보는 ‘완전히’ 틀린 것이었다. 이라크가 어떤 자재를 사들이면 그게 대량파괴무기 생산능력을 갖췄다는 식으로 잘못 해석됐다. 가령 고강도 알루미늄관은 로켓포 제작을 위한 것이지 원심분리기용은 아니었다.” 더 눈길 끄는 건 그다음이다. 찰스 롭 위원장은 “비슷한 패턴이 북한이나 이란의 정보를 다루는 데서도 발견됐다”고 말했다.
개성공단 사태를 보면서 이라크를 떠올리게 된다. 조변석개하는 정부 고위관리들의 말을 보면, 북한에 관한 우리 정부의 분석을 믿을 수 있을지 심각한 의문이 든다. 이병호 국정원장은 지난주 국회에서 ‘(북한의 장거리 로켓) 주요 부품은 러시아에서 도입했다’는 취지로 발언했다고 여당 의원들이 전했다. 그러나 러시아 외무부가 “말도 안 된다. 증거가 있으면 공개하라”고 반발하자 조준혁 외교부 대변인은 “와전된 것”이라고 슬그머니 발을 뺐다.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더 심각한 발언은 홍용표 통일부 장관에게서 나왔다. “개성공단을 통해 북에 유입된 현금이 핵과 미사일 고도화에 쓰였다. 관련 자료도 있다.” 사실이라면 유엔 안보리 결의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다. 홍 장관은 사흘 만에 또다시 “와전됐다”고 꼬리를 내렸다. 외교안보 전문가인 홍 장관이 실언했다고 보긴 힘들다. 그가 “개성공단을 안정적으로 운영해 나가겠다”고 강조한 게 불과 3주 전이다. 그런 그가 뜬금없이 ‘개성공단 자금의 핵 개발 유입’을 주장한 이유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 그런 정보를 사실로 믿고 있는 탓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지속했던 개성공단의 불빛이 갑자기 꺼진 데엔 ‘확인할 수 없지만 그렇게 믿고 싶은’ 정보에 대한 편향이 자리잡고 있다.
박 대통령은 16일 국회 연설에서 ‘개성공단 달러의 북 노동당 지도부 유입’을 재차 강조했다. 누구도 진실을 단언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건 있다. 과거 10여년간 진보·보수 정권 모두 “특별한 문제 없다”고 봤던 개성공단 유입 달러를 돌연 ‘핵 개발 자금’이라 평가한다면, 그런 정보의 진위는 훨씬 더 세밀하게 검증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게 이라크 실패에서 미국 정부가 얻은 교훈이다. 대통령은 여러 보고서를 함께 읽고 종합적으로 정보를 평가해야 오판을 막을 수 있다고 미 의회는 지적했다. 현 정권은 지금 북한 정보를 그렇게 다루고 있는가. 국회에서 외골수로 연설하는 대통령을 보니, 걱정만 든다.
pcs@hani.co.kr
박찬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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