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웅 시인
오지 않는 중국집에 다시 전화했을 때 응답은 한결같다. “방금 출발했어요.” 방금, 바로 지금이라, 영어로는 라잇 나우다. ‘바로 지금’은 내가 다시 수화기를 들기 전까지는 시작되지 않았던 시간, 전화를 건 바로 그 순간에 개시된 시간이다. ‘방금’을 불러오려면 먼저 전화기를 드는 실천이 있어야 한다. 그 실천의 끝에서 우리는 순수하게 분열된 시간을 만나게 된다. ‘바로’와 ‘지금’으로 분열된 시간. 두 말 사이에서 요동하는 시간. ‘바로’를 즉각적으로 과거의 것으로 만들며 도래하는 ‘지금’의 시간. 두 개의 지금 사이에서 모든 것이 요동하고 뒤틀린다. 법 앞에서도 ‘바로 지금’이 필요하다. 법을 제정하는 사람은 법의 바깥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법의 윤곽을 만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 제정자(입법자)가 곧 법 위반자(범법자)라는 역설이 생긴다. 이때에도 법은 분열한다. 그는 불법(스스로 법을 위반했으므로)이자 합법(그 위반을 위반함으로써 법을 세웠으므로)이다. 바로 그 때문에 큰 효과가 없다 해도 ‘바로 지금’이라는 순수한 제스처가 필요한 것이다. 그것만이 법의 시간을 뒤흔들고 법을 동요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테러방지법에 맞서 야당 의원들이 각종 기록을 갈아치우며 필리버스터를 하고 있다고 한다. 다섯~열 시간이 넘는 고통 속에서도 ‘바로 지금’을 외치고 있다고 한다. 방금 출발했다고 한다.
권혁웅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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