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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켄타우로스 시대 / 최원형

등록 2016-03-22 18:31수정 2016-03-23 08:44

러시아 출신 가리 카스파로프는 ‘기계에 진 인간’으로 알려져 있다. 1985년부터 2000년까지 무려 16년 동안 세계 챔피언 자리를 지켰던 체스의 고수지만, 1997년 아이비엠(IBM)이 만든 슈퍼컴퓨터 ‘딥블루’와의 대결에서 진 일이 세상에 큰 충격을 안겨줬다.

그러나 정작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그 뒤의 행보다. 카스파로프는 인간과 컴퓨터가 한 팀이 되어 체스를 두는 새로운 게임 형식을 만들어냈고, 여기에 ‘켄타우로스’란 이름을 붙였다. 상반신은 인간이고 하반신은 말인, 그리스 신화 속 반인반마 종족의 이름을 딴 것이다.

1998년 그는 불가리아 출신 그랜드마스터 베셀린 토팔로프와 켄타우로스 체스 대결을 벌였다. 두 사람은 체스 소프트웨어와 수십만개의 체스 게임 데이터베이스가 입력된 컴퓨터를 활용해 대결을 펼쳤다. 1대1 대결에서 카스파로프에게 뒤졌던 토팔로프는 컴퓨터 활용에서는 더 뛰어난 능력을 보이며 대결을 무승부로 이끌었다.

2005년에는 ‘프리스타일’ 체스 대회가 열렸다. 참가자들이 자유롭게 자신이 원하는 체스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아예 문호를 개방했다. 참가자들 가운데에는 그랜드마스터급 체스 기사들도 있었고, ‘히드라’처럼 딥블루보다 훨씬 더 강력해진 슈퍼컴퓨터도 있었다. 그러나 최종 우승은 미국의 20대 청년들인 스티브 크램턴과 재커리 스티븐에게 돌아갔다. 이들은 흔해 빠진 델과 휼렛패커드 컴퓨터를 썼고 체스 실력도 아마추어 수준이었지만, 컴퓨터 활용 능력이 뛰어났기에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현재 체스 세계 챔피언은 인간도, 기계도 아닌 셈이다.

삶의 영역 곳곳에서 우리 존재는 이미 켄타우로스다. ‘기계가 절대 쫓아올 수 없는 인간 고유의 능력’을 찾아내려 애쓰는 것 자체가 무망해 보인다. 그보다는 켄타우로스의 시대에 더욱 깊어질 불평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더 절실한 숙제다.

최원형 여론미디어팀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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