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마흔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에이브러햄 링컨의 말은 약간 수정이 필요해 보인다. 우선 “After 40, every man gets…”로 주어를 남성으로 한 것은 요즘 같으면 성차별적 표현에 해당한다. 그리고 사람의 얼굴은 딱히 마흔이 아니라 실제로는 쉰, 예순이 넘어서도 계속 변하는 법이다.
박근혜 대통령을 봐도 그렇다. 대통령 선거가 있던 2012년과 지금의 얼굴은 확연히 달라졌다. 예전에 박 대통령에게는 정치적 반대자들도 호감을 느끼게 하는 매력적 면모가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그런 매력이 천리만리 사라져버렸다. 언제나 분노와 적개심, 짜증이 얼굴에서 떠나지 않는다. 유일하게 환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해외에 나갈 때뿐이다.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차 출국한 박 대통령의 활동 모습을 보면 그 말을 실감할 것이다.
박 대통령의 얼굴 모습의 변화는 단지 국정 운영의 과중한 스트레스, 혹은 나이가 들면서 나타나는 자연적인 노화 현상과는 분명히 거리가 있다. 그것은 국사와 국민을 대하는 마음가짐의 반영이 아닐까 한다. 잇따른 국정 운영의 실패와 판단착오 속에서도 모든 것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심리구조, 꽃다운 청춘들이 떼죽음을 당해도 애틋한 마음 한 가닥 갖지 않는 차가운 심성 등이 얼굴에 그대로 묻어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가뭄에 콩 나듯 기자회견을 하고 나면 시중에는 보톡스가 어떻고 하는 수군댐이 오간다. 얼굴 근육의 경직성이니 미소 짓는 표정의 어색함 따위가 추론의 근거인데, 진위를 떠나 대통령 얼굴에 대한 대중의 왕성한 호기심과 관찰력이 놀랍다. 그런 주장이 맞는지야 알 길이 없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박 대통령에게 ‘중독’ 내지는 ‘마비’ 현상이 있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국민에게 고개 숙여야 할 때 화를 내고, 눈물을 흘려야 할 때 책상을 내리치는 태도는 ‘권력 중독’이나 ‘양심 마비’가 아니고는 설명이 불가능하지 않은가.
4·13 총선을 앞둔 지금 박 대통령이 홀로 있을 때의 표정은 어떨까 상상해 본다. 야권의 분열로 여당의 압승이 예상되는 데서 오는 득의만면함, 그러면서도 눈엣가시인 유승민 의원 등이 다시 국회에 입성하는 것에 대한 적개심, 감히 ‘옥새 쿠데타’로 자신에게 맞서려 한 김무성 대표에 대한 분노 등이 뒤섞여 있지 않을까. 그래서 ‘어디 한번 총선만 끝나고 나면 보자’며 입술을 앙다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짧은 기간 안에 얼굴 모습이 많이 바뀐 정치인으로는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빼놓을 수 없다. 29일 안 대표의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 장면을 보고 난 뒤 예전에 그가 출연했던 ‘무릎팍도사’와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 등을 찾아서 다시 보았다. 안 대표의 얼굴은 정말로 많이 변해 있었다.
안 대표의 지금 얼굴은 강인함, 결기, 단호함 등의 단어로 대표된다. 반면에 예전의 해맑고 선하고 온유한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정치가 얼마나 사람의 얼굴을 쉽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다. 그리고 아쉽고 안타깝다. 한때 안 대표에 대한 대중의 열광적 지지는 그런 해맑고 선한 얼굴에 대한 신뢰와 사랑의 표시였는데 그 얼굴은 어디로 갔을까. 게다가 그의 강고함이나 단호함마저도 날이 갈수록 집착과 미련, 안간힘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뭘까.
정치인들은 한 번쯤 거울 앞에서 자신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예전의 초롱초롱하던 눈빛이 욕심으로 흐려지지는 않았는지, 맑은 기운이 감돌던 피부는 집착과 욕망으로 검게 변하지는 않았는지를 곰곰이 살펴볼 일이다. 하지만 정치인들에게 그런 주문은 헛된 것인지 모른다. 오히려 유권자들이 직접 거울을 그들의 얼굴에 갖다대는 것이 더 빠른 길일 것이다. 선거라는 민심의 거울을 말이다. 특히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라고 묻고 있는 여왕께는 제대로 된 거울이 정말 필요한 시점이다.
김종구 논설위원 kjg@hani.co.kr
김종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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