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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합법성과 정당성 / 최원형

등록 2016-04-13 23:44

대의민주주의와 이를 제도화한 의회는 곧잘 비판이나 부정적 평가의 대상이 되곤 한다. ‘인민의 자기 통치’라는 민주주의의 본질적인 이상에 비춰볼 때, 인민이 뽑은 대표들이 모여서 자기들끼리 무언가를 쑥덕이는 모습은 어쩐지 ‘정당성’이 빠진 것만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의회는 오늘날 민주주의를 담지하는 중요한 한 축으로 ‘합법성’의 중심에 있다.

독일의 법철학자 카를 슈미트는 무책임한 의회제 민주주의를 비판하고 ‘결단’을 내려줄 주권자의 모습을 찾는 데 힘을 썼다. 특히 1920~1930년대에 관련 저술을 쏟아냈다. <합법성과 정당성>은 그 정치적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저작이다. 여기서 그는 의회제 민주주의의 ‘합법성’ 체계에 강한 의문을 던지고, 주권자인 인민의 의지를 직접 묻는 국민투표식 민주주의의 ‘정당성’이 더 우위에 있지 않으냐고 강변한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국민의 환호와 지지를 등에 업은 대통령이 나서서 온갖 이해관계에 얽혀 지긋지긋한 토론만 벌이는 의회를 대체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 주장은 거짓말처럼 곧바로 현실이 됐다. 책이 출간된 1932년, 독일 연방정부는 대통령의 긴급명령권을 발동해 사민당의 아성이자 보수주의자들의 눈엣가시였던 프로이센 주 정부를 해산했다. 소수 극우정당에 불과했던 나치는 38%의 지지율로 연방 의회에서 최대 원내교섭단체가 됐다. 2년 뒤 열린 국민투표에서 독일 국민은 히틀러에게 ‘지도자 겸 연방 총리’라는 절대권력을 합법적으로 부여했다.

제20대 총선이 끝났다. 슈미트의 주장과는 정반대의 맥락에서, ‘의회의 합법성이 정당성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명제를 되새겨볼 때다.

최원형 여론미디어팀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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