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지 않고 배불리 먹고 싶다.” 일본의 한 대학에서 시간강사로 일하는 구리하라 야스시의 좌우명이다. 노동자란 말을 굳이 ‘근로자’로 바꿔서 부를 정도로 근면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들으면 혀를 찰지도 모른다. 최근 그가 쓴 <학생에게 임금을>이란 책이 국내에서 번역 출간됐다. 대학은 자본주의 체제를 지탱하는 하나의 ‘사회적 공장’이므로 그에 속한 사회적 노동자인 학생도 제 몫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발칙하고 엉뚱해 보이는 이 주장에는 나름의 이론적 근거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인 ‘공공재’ 논의다. 근대 경제학은 자본·노동·토지를 3대 생산요소로 보고, 이에 따라 생산된 부가 각각 이자·임금·지대의 형태로 분배된다고 했다. 그러나 구리하라는 “애초 모두가 공유하는 천연자원을 기업이 제 것인 양 독점하고 자유롭게 사용해서 부를 만들어낸 것 아니냐”며 공공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니 공공재에 대한 권리를 ‘임금’의 형태로 사회에 청구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것이다.
기본소득 아이디어를 선구적으로 제시했던 영국의 클리퍼드 더글러스는 ‘문화적 유산’이 부를 생산하는 데에 다른 세 가지 요소보다 훨씬 큰 영향을 주며, 그에 대한 청구권은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귀속된다고 주장했다. 또 ‘얼마 일했으니 얼마 받는다’ 식의 개인을 겨냥한 상벌 시스템은 이런 진실을 감추기 위한 것이라는 의문을 품었다.
몫이 없거나 적던 사람들에게 정당한 몫을 되찾아주려면, ‘○○에게 임금을’처럼 부의 재분배를 요구할 근거가 되는 청구권의 범위 자체를 확대하는 게 필요하다. ‘저성과자’ 해고와 비정규직 확대를 통해 억지로 만들어낸 일자리 수보다, 어쩌면 “일하지 않고 배불리 먹겠다”는 좌우명이 더 발전적이다.
최원형 여론미디어팀 기자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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