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가엘티이(LTE) 대신에 전화선으로 인터넷을 쓰던 시절에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당시엔 ‘열정페이’라는 말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열정페이를 넙죽 수용할 만큼 개념(?)이 없었고 정신적·체력적 에너지도 아까워할 줄 몰랐다.(지금의 청년들은 열정을 헐값에 내놓으라는 사회적 강요의 수준이 다르니 대등하게 견줄 바는 아니다.) 한겨레 노조가 생활임금을 요구하며 경영진과 각을 세울 때 뭘 저렇게까지 하나, 고개를 갸웃거리던 띨띨한 청년이기도 했다.
세월은 흘러 흘러 나는 청년 시절을 뒤로하고 아이를 기르는 중견 직장인이 되었다. 월급도 호봉이 올라가고 회사 안팎의 사정이 바뀌면서 제법 모양새를 갖췄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 열정페이와 무관한 존재가 되었는가? 아니 난 요즘에 와서야 열정페이의 구조를 곳곳에서 실감한다. 나는 순간순간 누군가의 열정페이에 빌붙고 있지 않나 전전긍긍한다.
열정페이란 말은 헬조선 청년들의 입에서 처음 나왔다. 하지만 이는 결국 급여 외에 일이 주는 여러 가치를 빌미로 노동비용을 최소화하려는 우리 사회 전체의 전략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커리어 쌓기, 일의 재미, 직업적 보람과 사명감, 친분(동료애, 가족 간 애정) 등을 빌미로 헐값에 또는 무보수로 노동 혹은 추가노동을 요구하고, 거부하면 너 말고도 할 사람 많다, 사명감이 없다, 동료애가 없다, 사랑과 희생정신이 부족하다고 비난한다.
워킹맘의 라이프사이클에 들어서고 보니, 직장생활의 여건은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손주 사랑을 빌미로 헐값에 퉁친 친정엄마의 육아노동에 기대고 있지만, 곳곳에서 구멍이 난다. 밤새 아팠던 아이를 두고 출근하고, 일단 큰 병원에 가보라는 의사와 통화한 뒤 기사 마감을 어설프게 서두르고, 택시 안에서 토하는 아이를 붙들고 대학병원으로 내달리고, 토사물이 묻은 택시 안을 연신 닦아대며 기사님께 머리를 조아리고, 다음날도 응급실로 달려가 혼비백산 비슷한 하루를 더 보내고…. 그러고는 비몽사몽 이 글을 마감하고 있다. 이렇게 주말을 보낸 나는 이번주에 창의적인 발제와 치밀한 취재를 수행하고, 사태의 이면을 짚는 날카로운 기사를 생산할 수 있을까? 미안하다, 동료들아, 다시 한번 머리를 조아린다. 아마도 나는 조직에 민폐가 되어선 안 된다는 당위와 눈치보기, 만성피로가 뒤범벅이 된 좀비 노릇을 할 공산이 크다. 이런 삶의 이벤트가 일회성 사안일까? 이런 일은 이전에도 종종 있었고, 앞으로도 한동안 그럴 것이다. 비슷한 라이프사이클에 들어선 ‘워킹맘’ ‘워킹대디’ 동료들의 삶에서도 이런 고단함을 종종 목격한다.
한겨레신문사가 창간특집으로 좋은 일자리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우리 자신의 일자리의 질을 분석했다. 우리는 올해 육아휴직자 가운데 남성 비중이 43%나(!) 된다. 하지만 이는 육아휴직자 중 남성 비중이 5.6%(2015년)에 그치는 헬조선 평균에 비춰 칭송받을 일일 뿐 우리라고 평균적 직장문화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일이 사람의 라이프사이클을 존중하는 게 아니라, 라이프사이클이 일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건 비슷한 구석이 있다는 얘기다.
사실 한겨레신문사는 높아지는 남성 육아휴직률을 뿌듯해할 게 아니라, 이들이 일과 삶의 균형을 위해 떠나간 자리를 어떻게 메워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이를 다른 동료들의 ‘열심’과 ‘사명감’으로 메워보자 할 일이 아닌데, 현실은 그러하다. 이는 다른 동료들에게, 순진한(?) 사회 초년생들에게 보람과 사명감을 빌미로 무한 열정페이를 강요하고, 나머지는 이에 기대어 눈치를 보게 만든다. 이게 비단 한겨레 기자만의, 나만의 고민일까.
정세라 경제에디터석 기자 seraj@hani.co.kr
정세라 경제에디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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