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주나라 여왕 때 왕을 쫓아내고, 소공과 주공 두 재상이 협의해서 정사를 봤다. 쫓겨난 왕이 죽을 때까지 14년간 이어진 이 시기의 정치를 ‘공화’(共和)라 했다고 사마천은 <사기>에 기록했다. 물론 이와 달리 ‘공백화’가 왕위를 찬탈했다고 쓴 사서도 여럿 있다.
이 공화라는 단어를 Republic의 번역어로 처음 쓴 것은 일본인들이다. 19세기 지리학자인 미쓰쿠리 쇼고가 ‘Republic=군주가 없는 나라’를 어떻게 번역하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유학자 오쓰키 반케이한테 사기에 기록된 이야기를 설명 듣고 ‘공화정치’라고 번역했다고 한다.
대만 독립운동세력은 1895년 독립 대만의 국호를 대만민주국이라 하고, 영문으로 ‘Republic of Taiwan’이라고 썼다. 우리도 제헌헌법 때부터 나라의 정체를 ‘민주공화국’이라 하고, 국호에 리퍼블릭을 쓴다. 하지만 헌법학자들은 공화국을 ‘왕정이 아니다’라는 의미 정도로만 해석한다. 진보정치세력도 ‘공화주의’에 큰 의미를 둔 적이 없다.
유승민 의원이 지난해 7월8일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사퇴하면서 “정치생명을 걸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고 하더니, 지난달 31일 성균관대 강연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공화주의 실현’을 강조했다. 그의 설명대로 공화주의는 “공공선을 담보하는 법의 지배 안에서, 시민들이 다른 시민들에게 예속되지 않고 자유를 누리며, 시민적 덕성을 실천하는 정치 질서”다.
서양 정치사에서 공화제는 군주제에 대한 저항의 논리였다. 유 의원이 이 나라를 ‘선거로 왕을 뽑는 체제’라고 보고 있다면 의미심장하다. 새누리당에 복당한 그가 단지 박근혜 대통령과 차별화를 위해 공화주의를 수사로만 사용하고 말 것인지, ‘공화주의 운동’을 벌일지 궁금하다.
정남구 논설위원 jej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