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아카데미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등 6개 부문을 휩쓴 ‘허트 로커’(The Hurt Locker)는 이라크 주둔 미군 폭발물처리반(EOD)의 폭탄 제거 업무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도로 한복판이나 건물에 폭발물로 추정되는 물체가 발견되면, 처리반은 먼저 ‘폭탄 제거 로봇’(bomb disposal robot)을 보내 폭발물인지 살펴보고 의심이 들면 원격조종으로 폭파시킨다. 그런데 가끔 이 로봇이 엎어지거나 작동을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투박한 방호복을 입은 병사가 직접 다가가 폭탄을 해체하거나 폭파시켜야 한다.
주인공 제러미 러너는 오히려 목숨을 건 이 임무를 즐긴다. 그는 일부러 폭탄 로봇을 중간에 세워놓고 방호복도 입지 않은 채 직접 폭발물이나 부비트랩에 접근해 해체 작업을 벌인다. 폭탄이 터지지 않을까 하는 조마조마함, 그리고 이런 위험한 작업방식에 반발하는 다른 조원들과의 갈등이 내내 영화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이라크에서 수많은 미군 목숨을 구했던 ‘폭탄 제거 로봇’(폭탄 로봇)이 이젠 미 국내에서 범법자를 살상하는 무기로 등장했다. 텍사스에서 경찰 5명을 조준 살해한 용의자를 7일 댈러스 경찰이 ‘폭탄 로봇’을 이용해 폭사시켰다. 댈러스 경찰서장은 “총격전 끝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이 사용한 폭탄 로봇은 노스럽 그러먼에서 제작한 ‘안드로스 마크 브이에이원(V-A1)’이다. 무게 355㎏에 디지털카메라를 달았고 약간의 폭발물을 장착해 리모컨으로 폭발시킬 수 있다. 댈러스 경찰은 2008년 15만 달러에 이 로봇을 구입했다고 한다. 폭탄 로봇은 애초 군용으로 제작돼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수천대가 활약했다. 그 이후엔 경찰 특수기동대(SWAT) 등으로 사용 범위가 확산됐다. 4월에 캘리포니아 경찰은 무장한 용의자가 먹을 것을 요구하자 이 로봇을 이용해 피자를 ‘배달’한 적이 있다.
폭탄 제거용으로 개발된 로봇이 사람을 죽이는 데 사용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라크에서 미군은 바리케이드 뒤나 건물 안에 클레이모어를 실은 폭탄 로봇을 들여보내, 반군이 있으면 곧바로 클레이모어를 폭파해 사살했다. ‘폭탄 제거 로봇’의 ‘인명 살상 로봇’으로의 변신은 이미 예고됐던 셈이다.
영화가 아카데미상을 받은 뒤 ‘허트 로커’ 뜻이 무엇이냐는 궁금증이 일었다. 캐스린 비글로 감독은 ‘심각한 부상 상태를 뜻하는 미군 속어’라고 설명했다. 영화 작가 마크 볼은 ‘도저히 빠져나올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을 뜻한다고 말했다. 폭탄이 터지기 직전에 그걸 깨달은 병사는 바로 ‘허트 로커’ 상황에 있는 거라고 작가는 설명했다.
댈러스에서 경찰이 보낸 폭탄 로봇과 마주한 용의자는 그 순간 무슨 생각을 했을까. 로봇이 사람 목숨을 앗아가는 뜻밖의 상황이 또다른 ‘허트 로커’가 됐다.
박찬수 논설위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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