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 학장 지금 서울에서 공간 고급화로 일어나고 있는 일도 가난한 원주민들의 생활 터전을 없애버린 뉴욕의 사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상황은 도시에 대한 권리가 보편적 권리로 보장받지 못함을 말해준다. 10% 대 90%, 아니 1% 대 99% 사회는 이런 공공정책의 효과가 축적된 결과일 것이다. 서울 마포구에 있는 ‘경의선 숲길’을 지나다닐 때가 가끔 있다. 이 숲길은 홍제천과 용산문화체육센터 사이에 난 좁지만 길게 늘어진 도심 근린공원이다. 경의선 폐선 유휴지로서 한때 아파트 단지로 개발된다는 소문도 돌았지만, 철도선이 지하로 들어가면서 지상 부분이 최근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이런 공간이 만들어진 것은 환영할 일임이 분명하다. 고층 건물로 빽빽한 대도시 도심에서 시야가 툭 트인 녹지는 가슴도 시원하게 만든다. 한 달쯤 전 귀가하던 중에 내가 본 그곳 모습도 여유로워 보였다. 제법 늦은 밤이었지만 숲길 공원은 무리를 이루며 음료를 마시고 환담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서울에서 밤늦게까지 많은 사람들이 한가롭게 모여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쾌적한 장소는 많지 않다. 문제는 그런 장소를 만들어내는 일이 ‘젠트리피케이션’인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이란 재개발된 도심 주거지에 중·상류층이 몰려들면서 땅값과 집값이 올라 가난한 원주민은 다른 곳으로 쫓겨나는 현상을 말한다. 그동안 재개발이 이루어진 곳에서는 대체로 이런 현상이 반복되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강력하게 추진했던 뉴타운 사업이 대표적인 경우다. 이 사업이 종료된 뒤 원주민 재정착률은 평균 20%도 되지 않았다. 은평 뉴타운 1지구는 재정착률이 20%, 길음 뉴타운 지역은 17%, 그리고 난곡 재개발 지구는 겨우 8.7%에 불과했던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은 공간을 고급화하는 효과가 있다. 뉴타운이나 공원이 조성되면 해당 지역과 그 주변은 생활여건이 개선된다. 문제는 이런 변화로 불평등이 심화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공간의 고급화로 덕을 보는 쪽은 주로 돈 있는 사람들이다. 숲길 공원이 조성되어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그 주변에는 카페며 음식점, 술집 등 소비 공간이 부쩍 늘어났다. 소위 ‘뜨는’ 곳이 된 경의선 숲길 주변의 땅값과 집값은 지금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변화는 이곳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주거비용과 생활비용의 증가를 의미한다. 재개발 지역의 원주민 재정착률이 턱없이 낮은 이유가 어디에 있겠는가. 공간 고급화는 외국에서도 일어났던 일이다. 서울시가 지금 조성하고 있는 서울역 고가도로공원은 미국 뉴욕의 하이라인공원을 본뜬 것으로 알려졌다. 하이라인공원은 1980년대 이후 폐선이 된 첼시 지역의 고가철도를 보행자 공원으로 만든 곳이다. 사진으로 보면 이 공원은 쾌적하고 근사하게만 보이고, 방문객의 모습도 무척 여유로워 보인다. 그러나 공원 조성이 모든 사람에게 축복이었던 것은 아니다. 과거 슬럼가였던 첼시 지역은 재개발 이후 주변 집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다고 한다. 지금 서울에서 공간 고급화로 일어나고 있는 일도 가난한 원주민들의 생활 터전을 없애버린 뉴욕의 사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런 상황은 도시에 대한 권리, 즉 도시에서 자유로이 거주하고 생활할 권리가 보편적 권리로 보장받지 못함을 말해준다. 공공정책의 효과로 땅과 집의 가치가 올라 혜택을 누리는 상층부 인구가 있다면, 바로 그로 인해 뿌리박고 살던 곳에서 쫓겨나는 하층부 인구가 있다. 오늘날 10% 대 90%, 아니 1% 대 99% 사회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이런 일들이 계속 일어나 그 효과가 축적된 결과일 것이다. 최근 서울시는 젠트리피케이션이 만들어내는 악영향을 막기 위해 나름대로 대책을 세우고 있다고 한다. 재개발로 임대료가 급증하는 곳들을 대상으로 건물주와 임차인 간의 상생협약과 신축건물의 저가 임대를 유도하고 일부 ‘장기안심상가’를 조성하는 것이 그런 예다. 이런 대책이 없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야 말할 필요가 없다. 시정부가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섰으니 일정한 효과도 기대된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개발 혜택을 본 개인들로부터 이익금의 일부를 세금으로 환수해야 한다고 본다. 그렇게 해서 모인 재원을 어떻게 쓰느냐는 민주적으로 논의할 일이다. 하지만 이때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개발로 인해 불이익을 당하는 사람들의 권익일 것이다. 도시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는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한다. 도시 개발을 통해 소수는 권리를 누리고, 가난한 다수는 권리를 박탈당하게 하는 지금의 공간 정책이 계속되는 것은 정의의 원칙을 위배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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