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제주팀 기자 일주일 전 광주광역시교육청에는 새 식구가 생겼다. ‘경제검찰’이라 불리는 금융감독원에서 파견 나온 직원이다. 그는 금융교육협력관이라는 명함을 달고 근무 중이다. 금융감독원에서 먼저 파견하겠다고 요청했다. 국민한테 금융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게 이유였다.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의 문을 두들겨 6곳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금융교육이 그토록 시급할까 되짚어 봤다. 도저히 수긍이 되지 않았다. 생각할수록 고개가 갸우뚱해졌다. ‘고마운’ 협력관은 시도교육청에 그치지 않는다. 시도 자치단체에는 더 많다. 국회협력관, 경제협력관, 재정협력관, 법무협력관, 자문대사 등 분야도 다양하다. 내로라하는 힘 있는 부처와 기관이 파견한다. 기획재정부, 금융감독원, 국회 사무처, 한국은행, 대검찰청, 외교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등등. 협력관이라는 직책은 2000년대 초반부터 지역에 자리잡기 시작했다. 애초 국제 행사나 예산 확보를 위해 자치단체에서 전문 인력을 필요로 했다.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와 국회 사무처가 첫발을 내딛자 다른 기관들도 앞다퉈 길을 닦았다. 법적 근거는 불명확했지만 통상 쌍방의 합의로 파견이 이뤄졌다. 한번 만들어진 자리는 예정된 사업이 끝나도 좀처럼 없어지지 않았다. 갈수록 파견 기관과 협력관 수는 늘어났다. 시도마다 대여섯명을 넘어섰다. 협력관은 대개 50대 서기관들이다. 상당수가 소속 기관에서 인사 적체의 대상인 점을 숨기기 어렵다. 당사자들은 ‘하필이면 나냐’며 탐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런 불만을 고려해 이들은 학연이나 지연 등 연고가 있는 지역에 배치된다. 월급은 파견 기관에서 받고, 1년 뒤면 되돌아간다. 소속 기관을 떠나 있는 동안엔 밤낮으로 외로움을 견뎌야 한다.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물 위의 기름처럼 떠돌기 일쑤다. “오늘은 누구와 점심을 먹을까” 늘 고민해야 한다. 처지가 같은 인공위성들끼리 동병상련하며 시간을 보낸다. 업무가 명확하지 않으니 평가가 있을 리 없다. 서기관은 시도에선 국장급에 해당하는 고위 공무원이다. 한 달 월급이 700만원이 넘는다. 이런 공직자가 지역에 와서 할 일 없이 빈둥거리는 모습은 지방공무원들한테도 나쁜 인상을 준다. 자치단체 입장에선 내칠 수도 안을 수도 없다. 월급을 그쪽에서 준다는데 박절하게 내쳤다가 기관끼리 불편해질 수 있다. 시도는 사무실을 내주고 4급에 해당하는 예우를 해준다. 초기에는 주택과 비서를 제공했으나 인원수가 늘어나면서 옛일이 됐다. 시도 소속이 아니어서 대놓고 인맥을 활용하거나 동향을 물어보는 등 일을 부리기가 껄끄럽다. 출장비 등 수당 약간을 챙겨주며 자발적인 ‘협력’을 바랄 뿐이다. 희망해서 오지 않았으니 돌아가면 곧바로 연락이 끊어진다. 학습효과로 후임자가 오면 적당한 거리를 두고 대할 수밖에 없다. 이런 풍경은 공직사회에 뿌리박힌 위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풀뿌리 지방자치가 출범한 지 20년이 훨씬 넘었지만 여전히 중앙부처는 ‘갑’, 자치단체는 ‘을’이다. 중앙부처가 결정하면 자치단체는 대놓고 거부하기 어렵다. 불평등한 교류협력으로 지역에 떠넘겨진 잉여인력은 전국에 100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이쯤에서 ‘협력’과 ‘자문’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꼼수’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먼저 잉여 인력의 유지에 따르는 예산 낭비와 기강 해이를 막아야 한다. 이대로 두면 이들을 떠안아야 하는 지역의 원성도 높아질 것이다. 실태를 전해준 공무원은 바로잡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익숙한 체념에 마음이 무거웠다. “별거 아냐, 원래 그래.” ok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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