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비
국제뉴스팀 기자
방 안에는 3층짜리 집이 있다. 집 앞 정원에 자리한 유모차에는 아기 미미인형이 앉아 유모차 승차감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1층에 들어서면 웨딩드레스를 입은 미미인형 둘이서 결혼식을 치르고 있고, 2층에는 가장 최근에 나온 신형 미미들이 위풍당당하게 의상을 뽐낸다. 3층은 좀 복잡하다. 버튼을 누르면 멜로디가 흘러나오는 라푼젤 인형은 가장 최근에 들여온 인형이다. 해외직구를 통해 구입한 디즈니 공주 인형 5개도 자리를 차지하면서 3층집은 더욱 비좁아졌다.
침대 옆에 자리한 3단짜리 책장은 말 그대로 미미의, 미미에 의한, 미미를 위한 3층집이다. 그중에서도 3년 전부터 함께한 ‘냉장고 미미’ 인형은 찌질했던 취준생 시절의 내 모습까지 모두 알고 있는 고참 인형이다. 자취방에서 가끔씩 혼잣말을 하는 스스로가 무서워지기 시작했을 무렵, 내 시선은 홀로 창틀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냉장고 미미’에 꽂혔다. ‘혼자 외로워하기 전에, 이 아이의 외로움이라도 먼저 달래줘야겠다.’ 하나 둘씩 들여놓은 인형은 지금까지 스무개로 불어났다.
미미인형은 거의 동거인에 가까운 존재다. 혼자 집에서 저녁을 먹는 날이면 인형 두어개를 식탁 위에 올려둔다. 밥 먹는 모습을 누가 봐주면 덜 외로워서다. 부드러운 머릿결을 유지하기 위해 분기별로 꼭 머리를 감겨주고, 혹시나 똑같은 옷이 지겨울까봐 옷도 갈아입힌다. 요즘엔 오프 숄더 의상이 유행이다.
가끔 인형들과 대화를 나눈다는 내 말에 한 친구는 ‘돌푸어의 비극’이라고 했다. 하우스푸어는 집이라도 있지, 나는 가진 건 인형밖에 없는 신종 ‘돌푸어’다. 내 평생 3층집을 가질 일은 없을 것 같으니 그냥 인형들이 사는 3층집에서 꿈과 희망을 찾기로 했다. 동시에 돌푸어로 살아갈 내 팔자와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덕질은 그 자체로 ‘덕통사고’라는 운명적 만남을 전제로 하기에.
반려동물을 키우기엔 버거운 1인가구라면, 돈과 노력이 많이 들지 않는 덕질을 하고 싶은 게으른 사람이라면, 그리고 가끔씩 혼잣말을 하는 나 자신이 무서워져 말을 걸 대상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조심스레 인형 덕질을 추천해본다. 커피 3잔 값이면 인형 하나는 거뜬히 살 수 있다. 보기에도 예쁘고 장식용으로도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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