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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덕기자 덕질기] 미미인형과 ‘돌푸어’

등록 2016-08-03 18:02수정 2016-08-09 14:46

황금비
국제뉴스팀 기자

방 안에는 3층짜리 집이 있다. 집 앞 정원에 자리한 유모차에는 아기 미미인형이 앉아 유모차 승차감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1층에 들어서면 웨딩드레스를 입은 미미인형 둘이서 결혼식을 치르고 있고, 2층에는 가장 최근에 나온 신형 미미들이 위풍당당하게 의상을 뽐낸다. 3층은 좀 복잡하다. 버튼을 누르면 멜로디가 흘러나오는 라푼젤 인형은 가장 최근에 들여온 인형이다. 해외직구를 통해 구입한 디즈니 공주 인형 5개도 자리를 차지하면서 3층집은 더욱 비좁아졌다.

미미의 드림하우스 전경
미미의 드림하우스 전경
침대 옆에 자리한 3단짜리 책장은 말 그대로 미미의, 미미에 의한, 미미를 위한 3층집이다. 그중에서도 3년 전부터 함께한 ‘냉장고 미미’ 인형은 찌질했던 취준생 시절의 내 모습까지 모두 알고 있는 고참 인형이다. 자취방에서 가끔씩 혼잣말을 하는 스스로가 무서워지기 시작했을 무렵, 내 시선은 홀로 창틀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냉장고 미미’에 꽂혔다. ‘혼자 외로워하기 전에, 이 아이의 외로움이라도 먼저 달래줘야겠다.’ 하나 둘씩 들여놓은 인형은 지금까지 스무개로 불어났다.

미미인형은 거의 동거인에 가까운 존재다. 혼자 집에서 저녁을 먹는 날이면 인형 두어개를 식탁 위에 올려둔다. 밥 먹는 모습을 누가 봐주면 덜 외로워서다. 부드러운 머릿결을 유지하기 위해 분기별로 꼭 머리를 감겨주고, 혹시나 똑같은 옷이 지겨울까봐 옷도 갈아입힌다. 요즘엔 오프 숄더 의상이 유행이다.

가끔 인형들과 대화를 나눈다는 내 말에 한 친구는 ‘돌푸어의 비극’이라고 했다. 하우스푸어는 집이라도 있지, 나는 가진 건 인형밖에 없는 신종 ‘돌푸어’다. 내 평생 3층집을 가질 일은 없을 것 같으니 그냥 인형들이 사는 3층집에서 꿈과 희망을 찾기로 했다. 동시에 돌푸어로 살아갈 내 팔자와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덕질은 그 자체로 ‘덕통사고’라는 운명적 만남을 전제로 하기에.

반려동물을 키우기엔 버거운 1인가구라면, 돈과 노력이 많이 들지 않는 덕질을 하고 싶은 게으른 사람이라면, 그리고 가끔씩 혼잣말을 하는 나 자신이 무서워져 말을 걸 대상이 필요한 사람이라면, 조심스레 인형 덕질을 추천해본다. 커피 3잔 값이면 인형 하나는 거뜬히 살 수 있다. 보기에도 예쁘고 장식용으로도 그만이다.

with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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