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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슬픔에 젖어 상승하는 멜로디

등록 2016-08-05 19:25수정 2016-08-05 19:39

[토요판] 성기완의 노랫말 얄라셩
난파와 ‘봉선화’
봉선화  작곡 홍난파, 작사 김형준, 노래 김천애

울밑에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필 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어언간에 여름가고 가을바람 솔솔불어
아름다운 꽃송이를 모질게도 침노하니
낙화로다 늙어졌다 네 모양이 처량하다

북풍한설 찬바람에 네 형체가 없어져도
평화로운 꿈을 꾸는 너의 혼은 예 있으니
화창스런 봄바람에 환생키를 바라노라

*홍난파는 조선의 한을 노래한 대표적인 음악인으로 그가 작곡한 ‘고향의 봄’과 ‘봉선화’는 나라 잃은 슬픔을 단순하면서도 빼어난 멜로디에 담아낸 명곡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홍난파는 ‘고향의 봄’과 ‘봉선화’의 작곡가다. 그것만으로도 난파는 조선의 얼을 노래에 담은 대표적인 음악인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이원수 작사의 동요 ‘고향의 봄’과 김형준 작사의 가곡 ‘봉선화’는 하나같이 북받쳐 오르는 눈물을 참고 만든 곡이다. 나라 잃은 슬픔을 단순하면서도 빼어난 멜로디에 실어낸 명곡들이다. 아직도 이 곡들은 이역만리 사할린이라든가 카자흐스탄 같은 타지에 살고 있는 우리 동포들에게는 눈물 없이는 부를 수 없는 노래들이다. 하긴, 이런 노래 없이 어떻게 외로운 타향살이를 견뎌왔으랴! 나라를 빼앗긴 일제 치하에서 이런 노래들 없이 어떻게 그 설움과 분노를 억누르며 살아왔으랴! 우리의 정서는 노래들에 큰 빚을 지고 있다. 김순남과 더불어 홍난파는 민족의 얼 전체가 대홍수로 떠내려가는 와중에 그것이 제정신을 잃지 않도록 키를 쥐고 있던 사람들이나 다름없다. 그만큼 노래는 무의식중에 자기가 누구인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려준다.

가령 봉선화의 구조를 보면 이 노래 역시 우리가 무엇을 희망하고 지향하는지, 멜로디의 계단 안에 그 씨들을 심어놓았다. 봉선화는 8분의 9박자로 되어 있다. 짧은 세 음절과 긴 한 음절(울밑에-선) 그렇게 네 음절의 반복이다. 주된 내용을 짧은 세 음정에 싣고 어미는 긴 음정에 맡겼다. 앞 세 음정이 짧게 끊는다면 뒤의 한 음정은 길게 뺀다. 그래서 계속 꼬리를 물고 출구를 열어나가는 구조다. 그렇게 다음 대목, 그다음 대목으로 열어나가면서 조금씩 조금씩 상승한다. ‘울밑에선’이 가장 낮다(도 음정). ‘네 모양이’의 ‘이’는 노래의 첫 음정(아래 도)의 한 옥타브 위로 상승한다. 그 추진력을 토대로 ‘길고 긴 날’에서는 바단조인 이 노래의 관계조에 해당하는 ‘내린 라’에서부터 시작한다. 곡에 끼어드는 이 유일한 장조의 느낌은 북받치는 슬픔을 딛고 희망의 작은 씨앗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길고 긴 날 여름철’을 견딘다. 그 모든 상승은 조금씩 어려움을 딛고 일어서서 마침내 ‘꽃필 적에’에 도달한다. 이 대목에 이르러 음정은 노래의 가장 높은 단계인 한 옥타브 위의 ‘파’에까지 도달한다. 발화의 단계에까지 도달하기 위해 이 노래는 그렇게 애쓰고 조금씩 음계의 언덕을 오르고 있었던 거다. 꽃을 피우고 나서는 이제 계단을 내려온다. 올라갈 때는 느렸지만 내려오는 속도는 그것보다 빠르다. 그저 네 마디면 족하다. 그래서 다시 낮은 옥타브의 토닉(근음) 파에 이르러 노래는 끝이 난다.

노래는 이렇게 그 구조 안에 사람들의 염원을 숨긴다. 숨길 수밖에 없는 시대가 있다. 드러내는 시대의 노래는 그래서 노래답지 않을 때가 많다. 아니, 노래는 어느 시대라도 자신의 바람을 숨긴다. 숨긴다기보다는 노래 안에 비언어적으로 품어 낸다.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이 노래들을 반복하여 부르고 외우고 곱씹고 좋아하면서 그 비언어적 구조에 담긴 희망을 잊지 않게 된다. 그것이 노래가 사람들의 얼을 추스르는 방식이다.

난파의 생은 비극적이다. 이토록 민족정신의 뿌리를 살려내는 노래들을 지었으면서도, 대표적인 친일 예술가의 한 사람으로 생을 마쳤다. 그는 음악가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소설가, 문필가이기도 했다. 슈만이 낭만주의 작곡가이면서 평론가였듯, 난파는 조선 최고의 음악평론가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우연히 그가 지은 책을 접할 수 있었다. 나는 어느 일요일 오후, 어느 골목을 지나다가 헌책방을 발견한다. 습관처럼 거기 들어가 본다. 작은 동굴 같은 헌책방에는 헌책들이 풍기는 묘한 곰팡이 냄새가 진동한다. 여름이라서 더하다. 이런저런 책들을 펼쳐보거나 바라보는데, 특이한 책이 하나 눈에 띈다. 제목이 ‘난파전집’. 홍난파가 쓴 글들을 모은 책이다. 얼마냐고 물어보니 1500원이란다. 그 책을 사가지고 와서 비 오는 소리를 들으며 읽어본다. 마음에서도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난파. 난이 핀 언덕이라는 뜻이다. 유학 시절, 독립운동에 가담하여 쫓기듯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신조선 음악의 창작과 이론적 정립에 앞장섰다. 음악에 관한 그의 많은 글들을 관통하는 주제를 한마디로 요약하라고 하면, ‘근대 조선음악은 어떤 음악이어야 하는가’라는 고민으로 압축된다.

장르로는, 난파는 ‘가극’이라는 장르에 크게 주목했다. 가극, 오페라의 번역어인데, 정통 가극에 대한 대중적인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먼저 가극에 대하여 일언할진대 근일 경향의 별이 없이, 혹은 소녀 가극 대회니, 혹은 남녀 가극 대회니 하는 회합을 종종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볼진대, 가극으로서 극히 빈약함보다도 차라리 일종의 창가 유희라 하는 편이 가당하다 하노니 소년 소녀들이 유희, 혹은 무도하며 간간이 창가와 대화를 한다고 그것을 가극이라고 생각함은 오해의 심한 자이외다.”

이렇게 보면 난파 역시 일종의 근대론자였던가. 또한 그의 음악관에서 ‘가정음악’이라는 독특한 개념도 눈에 띈다.

“어떤 가정에서는 모처럼 축음기를 사다 놓고도 이것을 효과 있게 이용하지 않고 때없이 아무것이나 걸어 놓아 두고는 집안 식구들은 딴 일을 하는 적도 많습니다. (…) 분주할 때나 특별한 일 있을 때는 물론이려니와 한가한 때라도 가족들이 함께 모일 때를 택하여 음악을 듣겠다는 마음의 준비를 가지고 듣는 것이 또한 필요한 것임을 항상 기억하십시오.”

그토록 열심히 새로운 조선 음악 창출을 역설하던 난파는 어느덧 힘이 부치고 지쳐 절망적인 상태에 이르게 된다. 냉소적인 필치로 자기 자신의 현실을 묘사한 <유모레스크>라는 글에서는 일종의 자조적인 상태를 보여준다.

“원체 이 판국이 음악과는 담 쌓은 세계라. 어느 누구를 붙잡고도 말 마디 할 길 없고 종일 소리쳐야 귀도 들썩하는 이 없는 음맹 환자의 병원 같으니 이 속에서 꾸물거리는 내 팔자야말로 몹시 불행하고 몹시 슬프다 아니할 수 없다.”

성기완 시인
성기완 시인
이 대목에서, 간접적으로 그가 친일로 향하게 된 원인의 일단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가지 말아야 했겠지만, ‘음악이 있는 곳’을 향하고 싶은 음악가의 절망적인 마음. 이 마음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좋을까. 봉선화를 들으며 다시 한번 슬픔에 젖는다.

성기완 시인·밴드 3호선버터플라이 멤버·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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