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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유레카] 저항가요, 소녀시대 / 박찬수

등록 2016-08-07 18:18수정 2016-08-07 18:52

집회나 시위에서 부르는 노래를 ‘저항가요’(Protest Song)라고 한다. 1960년대 흑인민권운동을 이끌었던 마틴 루서 킹 목사는 저항가요를 가리켜 “가장 특별한 방식으로 운동에 힘을 주고 우리를 하나로 단결시킨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도 많이 부른 ‘우리 승리하리라’(We shall overcome)가 그때 흑인민권운동을 상징하는 노래였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저항가요를 꼽으라면 ‘인터내셔널가’(The Internationale)를 빼놓을 수 없다. 1871년 파리코뮌이 붕괴한 직후, 봉기에 참여했던 외젠 포티에가 글을 쓰고 훗날 피에르 드제테르가 곡을 붙인 걸로 알려져 있다. 노동계급의 국제적 연대와 투쟁을 촉구하는 이 노래를 지금도 메이데이(노동절)엔 세계 곳곳에서 부른다.

생일 축하 노래를 제외하곤 가장 많이 불린 노래라는 ‘인터내셔널가’를 우리나라에선 듣기가 힘들다. 반공을 국시로 삼은 독재정권들이 이 노래를 몹시 불온시했던 탓이다. 그 대신 다른 노래가 현장에선 울려퍼졌다. 1970년대엔 ‘아침이슬’ ‘상록수’ 같은 김민기씨 노래를 많이 불렀다. 80년대엔 ‘임을 위한 행진곡’과 ‘노동해방가’ ‘반전반핵가’ 등이 널리 퍼졌다. 상황에 맞는 노래가 갑자기 떠오르기도 한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태 때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윤민석 곡)가 큰 호응을 받았다.

얼마 전 이화여대 시위에서 학생들이 경찰과 대치하며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함께 불렀다. 저항가요는 상황과 시기, 심리적 공감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미국의 흑인 죄수(레드 벨리)가 만든 ‘굿나잇 아이린’은 서정적인 노래임에도 흑인이 만들고 자유를 갈망한다는 함의를 얻어 저항가요로 떠올랐다.

“수많은 알 수 없는 길 속에 희미한 빛을 난 쫓아가/ 언제까지라도 함께하는 거야 다시 만난 나의 세계…” 새로운 시대고, 새로운 유형의 저항가요 탄생이다.

박찬수 논설위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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