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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미디어 전망대] 아직도 그 사람이 ‘없나요’? / 김세은

등록 2016-10-13 18:51수정 2016-10-17 14:08

김세은

강원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2016년 한국 사회는 기자의 용기와 집념을 절실히 요구한다. 정치는 무능하고 검찰은 손 놓아버린 이 나라에서, 파묻힌 진실을 끄집어낼 수 있는 건 그래도 언론밖에 없다. 전문가는 비겁하고 지식인은 눈치보기 바쁜 가운데, 아무리 요즘 언론이 어떻고 기자가 저떻고 해도 이 나라가 이만큼이라도 유지될 수 있는 건 그들 덕이 크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직도 이런 일이 벌어지나 믿기 어려운 다양한 비리와 크고 작은 불법들이 그나마 언론의 보도로 하나둘 밝혀지고 있다. 그런데도 그에 따른 처벌이나 후속조치는 미미하니, 사회가 바로잡히려면 말 많고 탈 많은 검찰의 기소독점권을 허물어 언론에 줘야 하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언론의 활약이 많은 사회는 대체로 후진적이다. 법과 제도가 제대로 작동을 하지 않는 곳에서 언론은 할 일이 많아지고, 권력과 자본이 덮고 감추려는 게 많은 사회에서 기자는 바빠진다. 우리 언론 역사에서 대표적인 특종은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다.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희대의 거짓 발표를 받아쓰는 대신 ‘팩트’를 찾아내 보도함으로써 6·10 민주화 항쟁의 발판을 제공했던 것이 1987년 1월, 어언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그 특종 기자는 지금 ‘놀랍게도’ 대통령비서실 홍보특별보좌관이 되어 있고, 보조취재를 했던 기자는 더 일찍이 이전 정권에서 정무기획비서관을 지냈다.)

오늘날은 어떠한가. 물대포에 맞아 쓰러져 그 후유증으로 사망했는데 사인이 ‘병사’라니 소름끼치는 기시감이다. 게다가 측근 비리에 대응하는 권력의 언어는 어쩜 그리 70, 80년대와 닮아 있는지. 한국 사회의 퇴행과 파행을 얘기할 때 양대 ‘공영방송’을 빼놓을 수 없다. 날이 새기 바쁘게 새로운 의혹과 문제들이 줄줄이 보도되지만 양대 공영방송은 그런 것들엔 일체 관심이 없다. 대충 무시하고 뭉개다가 한두 꼭지 스케치하듯 전하는 게 전부다. 그들의 기준은 분노와 허탈감을 느끼는 국민의 알 권리가 아니라 오로지 최고권력자의 심기다. 하루 3만건의 뉴스가 포털에 올라오는 이 디지털 시대에, 그들의 뉴스는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높으신 분이 “하필이면 딱 봐도” 괜찮을 것들로 매일매일 채워지고 있다. 과거엔 강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했다면 오늘날은 스스로 알아서 한다는 게 큰 차이다. 그땐 그나마 부끄러워했다면 지금은 뻔뻔하기 이를 데 없다는 게 심각한 문제다. ‘언론의 자유’는 그저 권력에 복종할 자유에 지나지 않음을 국정감사에서 당당히 밝히기까지 하지 않았나.

능력 있는 자를 징계, 해고하는 것은 능력 없는 자에게 자리를 주는 것과 더불어 조직을 망치는 지름길이다. 2008년 이래 권력의 언론 장악을 반대하다 수백명의 언론인이 징계와 해직을 당했고, 이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대통령이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을 지목하며 말했다는) “아직도 그 사람이 있나요?”라는 질문은 ‘아직도 그 자리에 돌아가지 못한’ 해직 기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엄혹하던 군사정부 시절에나 겪는 걸로 알았던 언론인의 해직사태를 2000년대 들어 다시 목도하게 될 줄은 차마 몰랐다. 그들의 복직이 이토록 어려울 줄은 더더욱 몰랐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속담처럼, ‘잃어버린’ 공영방송에 대한 우려는 저항의 동력조차 상실한 채 점차 체념과 비관으로 대체되며 두려운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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