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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덕기자 덕질기] 대물 / 조혜정

등록 2016-10-19 18:02수정 2016-10-19 20:20

조혜정
ESC팀장

“몇 미터까지 들어가 봤어?”

스쿠버다이빙을 1도 모르는 사람들은 이렇게 묻는다. 수심, 별로 안 중요하다. 내가 ‘수중관광’이라고 부르는, 바닷속 경치만 구경하는 레크리에이션 다이빙에선 깊이 들어갈수록 춥고 어둡고 오래 놀 수도 없다.(물론 지형과 수중 환경 등에 따라 다르긴 하다. 어쨌든 레크리에이션 다이빙의 권장 수심한계는 30m이고, 어쩔 수 없는 경우에도 40m 아래로는 내려가지 않는다.)

사진 비주얼 헌트 제공
사진 비주얼 헌트 제공
다이버의 질문은 다르다. “너 그거 봤어?” 다이버의 로망인 ‘그거’를 본 사람이 입을 열 땐 그의 자부심 가득한 목소리와, 자랑하고 싶어 미치겠다는 눈빛 때문에 당황할지도 모른다.

나도 어깨에 힘을 줄 만한 ‘그거’를 본 적이 있다. 그것도 두 차례나. 처음 본 건 2013년 8월28일 ‘다이버의 천국’으로 불리는 타이 꼬따오에서다. 오전 7시35분. 춤폰 피너클 포인트에서 꼬따오에서의 첫 다이빙. 하강해 가이드를 따라 이동하려는데 갑자기 사위가 컴컴해졌다. 분명 쾌청한 날씨였는데 이게 무슨 일이지? 갸우뚱하는데, 가이드가 갑자기 호들갑스럽게 수신호를 해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헉! 고래상어가, 두 마리나 지나가는 게 아닌가!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처음 간 포인트에서 입수하자마자 그런 대물을 봤으니, 더구나 그때가 인생 18번째의 다이빙이었으니 초짜가 무슨 정신이 있었겠는가. 자랑거리는 생겼지만 더 자세히 보고 싶다는 아쉬움도 떨칠 수가 없었다.

고래상어를 다시 본 건 이듬해 3월3일 필리핀 모알보알에서다. 모알보알 주인이나 다름없는 정어리 떼를 잡아먹으려고 고래상어가 간혹 출몰한다고 했다. 한 차례 다이빙을 마친 뒤 방카를 타고 다른 포인트로 이동하던 중이었는데, 다른 방카들이 한군데 몰려 북적대고 있었다. 고래상어가 나타난 것이다. 급하게 마스크만 쓰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5m 남짓한 고래상어는 정면으로 나를 바라보며 다가왔고, 나는 그 신비로운 모습에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녀석이 유유히 사라져 갈 땐 눈물도 살짝, 맺혔었다.

그게 끝이었다. 그 뒤로 지금까지 정확히 2년7개월 동안 150차례가 넘는 다이빙을 더 했지만 ‘대물운’은 그게 끝이었다. 심지어 개복치가 나타나는 시기에 맞춰 인도네시아 발리에 갔지만 공식적으론 만나지 못했다. 첫끗발은 역시 개끗발인가. 귀하게 만나야 할 녀석들을 너무 쉽게 만나 오만해진 마음을 하늘이 벌주는 걸까.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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