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덕기자 덕질기] 멈춤, 그 어려운 걸 내가 또 해낸다 / 조혜정

등록 2016-10-26 18:43수정 2016-10-26 20:23

조혜정
ESC팀장

(*잘난 척 주의)

시야(가시거리)는 기껏해야 3미터. 부유물도 많아 바닷속이 삭막한 느낌을 주는 날이었다. 경남 통영 욕지도엔 화려한 연산호도, 알록달록한 물고기도 없다는 사실은 이미 하루 전 그 바다에 처음 들어갔을 때 깨달은바, 9월10일 낮 12시24분 통단 방파제로 입수할 때 그런 풍경을 기대하진 않았다.(‘알록달록한’ 게 없다는 거지, 물고기가 없다는 게 아니다.)

오른쪽에 테트라포드를 끼고 가다 왼쪽으로 방향을 트는 가이드를 따라 몸을 돌리려는데 희끗, 뭔가 눈에 스쳤다. 설마, 지금 내가 본 게 해마야? 가만히 살펴보니, 조류를 따라 흐느적거리는 바다풀 사이에서 손가락 두 마디 길이가 될까 말까 한 하얀색 해마 한 마리가 놀고 있었다. 우와! 태어나 처음 보는 해마는, 어릴 때 <브리태니커 어린이 백과사전>에서 본 사진 그대로였다. 내 ‘겸손한’ 카메라로, 계속 춤을 추는 해마 사진을 찍는 게 쉽지 않았다. 셔터를 누르는 족족 초점이 나갔다. 가이드는 이미 시야에서 사라졌다. 살짝 무서웠지만, 처음 만난 해마를 조금 더 지켜보고 싶었다. 볼수록 신기했고, 직접 봤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차올랐다.(사실 다이빙할 때 가이드나 버디(다이빙 짝)를 잃어버리는 건 ‘사고’다. 다행히 나는 가야 할 방향을 제대로 찾아갔고, 가이드도 나를 찾으러 되돌아와 금세 만났기에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뭔가에 정신이 팔려서 가이드를 놓쳤다간 위험에 처할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사진 조혜정 제공
사진 조혜정 제공
취향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스쿠버다이빙 경험이 많아지면 해마처럼 작은 수중생물을 보는 재미가 쏠쏠해진다. 그 바탕엔 ‘다이빙 실력’이 늘어간다는 뿌듯함도 있는 것 같다. 다이빙 실력에는 안전하게 다이빙을 하는 능력, 내가 원하는 지점에 가만히 있는 능력이 포함된다. 안전은 알겠는데, 가만히 있는 게 무슨 능력이냐고? 이걸 과학적으로 설명하려면 부력과 압력, 보일의 법칙까지 들이대야 하지만 어려우니까 생략. 어쨌든 몸과 장비의 공기를 빼야 아래로 내려갈 수 있고 반대로 공기를 넣어야 위로 올라갈 수 있는데, 공기 조절이 서툰 초보자들은 원하는 만큼 움직이는 게 잘 안된다. 더구나 가만히 있는 상태, 즉 위로 뜨지도, 아래로 가라앉지도 않는 ‘중성부력’ 상태는 공기를 미세하게 조절해야 유지할 수 있어 더욱 어렵다.

말미잘 사이에서 노는 투명한 유령새우, 돌 틈에 숨은 소라게 새끼처럼 ‘그냥’은 잘 안 보이는 작은 아이들을 발견하고 멈춰서 지켜볼 때마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오올, 나 좀 대단한데? 후훗~.

zesty@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