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특별기고] 염무웅 문학평론가, 영남대 명예교수
대통령 자신에 의한 전대미문의 국정문란으로 나라 전체가 소용돌이에 빠져들었다. 절대다수의 시민들은 지난 토요일의 전국적 시위 구호에서 나타났듯이 대통령의 즉각적인 퇴진을 요구하고 있고, 야당 정치인도 일부 여기에 동참하고 있다.
대통령이 현직에서 물러나야 할 이유는 지금까지 언론에 보도된 것만으로도 차고 넘친다. 박근혜는 선거 과정에서 남발했던 공약들은 물론이고 취임식에서 낭독했던 선서들 가운데 어느 하나 제대로 지킨 것이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조국의 평화적 통일과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 및 민족문화의 창달에 노력”하는 것이 취임선서가 규정한 대통령의 기본 임무인데, 박근혜는 재임 3년8개월 동안 온갖 합법적-탈법적 수단을 다하여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방해하면서 전쟁 직전의 위험까지 불사했고, ‘국민의 자유와 복리의 증진’에 역행하는 시책을 거듭함으로써 힘없는 노인과 미래를 잃어버린 청년들 입에서 ‘헬조선!’ 비명이 절로 터져 나오게 만들었으며, 그것도 모자라 문화예술 전반에 걸친 창조적 역량의 공격에 자신의 행정력이 동원되는 것을 방치하였다. “대통령은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는…”이라는 헌법 제84조 조항이 있지만, 이만하면 거의 ‘내란’에 준하는 범죄를 저지른 것 아닌가.
박근혜가 대통령직을 고수하든 사임하든 그는 실질적으로는 국민들에 의해 이미 ‘해임’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리사욕 이외에 눈에 보이는 게 없다는 듯이 국정을 짓밟은 한 여자와 근본을 알 수 없는 몇몇 측근들에게 5천만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관한 대통령으로서의 엄중한 책임을 불법적으로 위임함으로써 박근혜는 텔레비전 화면에 얼굴을 비치는 것 말고는 스스로 이미 현임에서 물러나 있었던 셈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모든 불의 불법한 내막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이제 그는 국민들의 강력한 요구와 자신의 무의식적 소망에 따라 결단을 내리는 것이 마땅하다. 다만, 이 절대적 당위를 구체적으로 현실화하는 과정에는 당면한 정치적 조건과 법률적 절차에 대한 합당한 분별과 고려가 따라야 한다. 이를 위해 우리가 참고할 역사적 선례는 내 생각에 4·19혁명이다. 당시의 진행 상황에 비추어 오늘 우리의 정치권과 시민사회는 어떤 교훈을 얻어야 하는가.
“혁명은 안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
김수영은 정치판 선수만 바뀐
4.19혁명의 결과를 탄식했다
신장개업을 막느냐 못막느냐
우리는 역사의 기로에 서있다
그러나 당장 결정적인 것은
탄핵함성이 박근혜 귀에 들리도록
목청을 한껏 높이는 일이다 다들 알다시피 1960년 3·15 부정선거를 전후하여 시작된 항의운동은 4월19일 절정에 다다랐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 주요 도시에서 대규모 규탄시위가 폭발하였고, 이승만 경찰의 무차별 총격으로 백수십명이 죽고 730여명이 부상하는 참극이 발생하였다. 서울에는 비상계엄, 지방 도시에는 경비계엄이 선포되었으나 이후에도 산발적 데모는 그치지 않았다. 당일 오후 미국 국무장관 크리스천 허터는 주미 한국대사 양유찬에게 한국 정부의 폭력을 비난하는 각서를 건넸다. 4월21일 전 국무위원이 일괄 사표를 제출했고, 월터 매카너기 주한 미국대사가 경무대(청와대)를 방문했다. 4월23일 장면이 부통령 사임서를 제출했고, 4월24일 이승만은 자유당 총재를 사퇴하고 일체 정당활동에서 손을 떼겠다고 언명했다. 이러는 동안 자유당 내의 소위 혁신파 국회의원 49명은 내각책임제 개헌을 추진하기로 합의하고 ‘헌정혁신동지회’(가칭)를 구성할 예정이라고 밝혀, 자유당은 사실상 해체 수순에 들어갔다. 여기까지만 보더라도 이승만 정권이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음이 드러난다. 원래 이승만 정부는 미국의 지지와 보수토착세력인 한민당의 협조로 출발했는데, 한민당(1960년 당시의 민주당)은 오래전에 야당으로 변했고 미국도 지지를 철회하고 있었다. 이제 이승만 정권을 지탱하는 물리적 기반은 친일경력자가 다수인 경찰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붕괴가 목전에 다가온 것이었다. 이때 결정타를 가한 것은 4월25일 대학교수들의 시위였다. “학생들 피에 보답하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머리 희끗한 교수들이 동숭동에서 종로로 걸어나오는 동안 따르는 군중은 수만명으로 불어났고, 구호도 “이승만 하야”로 상승하였다. 이날 민주당 의원 57명은 ‘대통령 하야권고 긴급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이승만은 허정을 외무장관, 이호를 내무장관, 그리고 권승렬을 법무장관에 임명했다. 4월26일, 시위의 열기가 더욱 고조된 가운데 마침내 이승만은 하야 성명을 발표했고, 여야 간부들은 3·15 선거의 무효, 과도내각 아래서의 내각책임제 개헌, 개헌 후 총선이라는 정치일정에 합의했다. 4월27일, 박승준 검찰총장이 사의를 표했고, 신임 허정 외무장관(수석 국무위원)은 국회와 협의하여 과도내각을 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4월28일, 이기붕 일가는 권총자살한 시신으로 발견되었고, 이승만은 경무대를 떠나 사저로 이주했다. 허정이 공석인 국무위원들을 임명함으로써 과도내각이 출범했다. 그런데 대통령 권한대행 허정이 과도내각의 시정방침으로 제시한 것이 유명한 “혁명적 목표를 비혁명적 방법으로 수행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혁명적 목표’란 당시의 격앙된 분위기를 고려한 수사에 불과했고 방점은 ‘비혁명적 방법’에 찍혀 있었다. 체질적으로 허정은 정치적 야심이 많지 않은 온건한 보수주의자였다. 이런 점이 자유당뿐만 아니라 민주당 정치인들에게도 허정을 과도기에 적합한 인물로 보이게 만들었을 것이다. 어쨌든 민주당은 7·29 총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둠과 동시에 신파와 구파로 나뉘어 각기 딴살림을 차렸고, 8월19일 신파의 장면이 국무총리로 인준받아 제2공화국 내각을 구성하자 결국 보수정당 본연의 반동적인 정책은 본격화하기 시작하였다. 시인 김수영이 1960년 10월30일의 시에서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고 탄식했듯이 혁명은 퇴색하고 정치판은 선수들만 교체된 것이었다. 바로 지금 우리는 낡고 썩은 기득권 독식체제의 ‘신장개업’을 막느냐 못 막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대통령의 즉각 사임이 60일 내 대선이라는 법의 암초에 걸린다면, 대통령이 국민 앞에서 실권 이양을 공공연하게 약속한 가운데 중립적 총리가 국회와 상의하여 한시적 임시내각을 구성하고 그 과도내각의 관리 밑에 내년 봄 ‘조기 대선’을 실시할 수 있을 것이다. 개헌이나 선거제도 개혁 등의 문제들은 대선 때 각 후보들의 공약을 통해 국민들 선택을 묻는 방식도 좋지 않겠는가. ‘집단지성’의 작동이 광범하게 요청되는 시점인데, 그러나 당장 결정적인 것은 ‘국민적 탄핵’의 함성이 박근혜의 귀에 분명하게 들리도록 우리의 목청을 한껏 높이는 일이다. 염무웅 문학평론가, 영남대 명예교수
김수영은 정치판 선수만 바뀐
4.19혁명의 결과를 탄식했다
신장개업을 막느냐 못막느냐
우리는 역사의 기로에 서있다
그러나 당장 결정적인 것은
탄핵함성이 박근혜 귀에 들리도록
목청을 한껏 높이는 일이다 다들 알다시피 1960년 3·15 부정선거를 전후하여 시작된 항의운동은 4월19일 절정에 다다랐다. 서울을 비롯한 전국 주요 도시에서 대규모 규탄시위가 폭발하였고, 이승만 경찰의 무차별 총격으로 백수십명이 죽고 730여명이 부상하는 참극이 발생하였다. 서울에는 비상계엄, 지방 도시에는 경비계엄이 선포되었으나 이후에도 산발적 데모는 그치지 않았다. 당일 오후 미국 국무장관 크리스천 허터는 주미 한국대사 양유찬에게 한국 정부의 폭력을 비난하는 각서를 건넸다. 4월21일 전 국무위원이 일괄 사표를 제출했고, 월터 매카너기 주한 미국대사가 경무대(청와대)를 방문했다. 4월23일 장면이 부통령 사임서를 제출했고, 4월24일 이승만은 자유당 총재를 사퇴하고 일체 정당활동에서 손을 떼겠다고 언명했다. 이러는 동안 자유당 내의 소위 혁신파 국회의원 49명은 내각책임제 개헌을 추진하기로 합의하고 ‘헌정혁신동지회’(가칭)를 구성할 예정이라고 밝혀, 자유당은 사실상 해체 수순에 들어갔다. 여기까지만 보더라도 이승만 정권이 급속도로 무너지고 있음이 드러난다. 원래 이승만 정부는 미국의 지지와 보수토착세력인 한민당의 협조로 출발했는데, 한민당(1960년 당시의 민주당)은 오래전에 야당으로 변했고 미국도 지지를 철회하고 있었다. 이제 이승만 정권을 지탱하는 물리적 기반은 친일경력자가 다수인 경찰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붕괴가 목전에 다가온 것이었다. 이때 결정타를 가한 것은 4월25일 대학교수들의 시위였다. “학생들 피에 보답하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머리 희끗한 교수들이 동숭동에서 종로로 걸어나오는 동안 따르는 군중은 수만명으로 불어났고, 구호도 “이승만 하야”로 상승하였다. 이날 민주당 의원 57명은 ‘대통령 하야권고 긴급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했고, 이승만은 허정을 외무장관, 이호를 내무장관, 그리고 권승렬을 법무장관에 임명했다. 4월26일, 시위의 열기가 더욱 고조된 가운데 마침내 이승만은 하야 성명을 발표했고, 여야 간부들은 3·15 선거의 무효, 과도내각 아래서의 내각책임제 개헌, 개헌 후 총선이라는 정치일정에 합의했다. 4월27일, 박승준 검찰총장이 사의를 표했고, 신임 허정 외무장관(수석 국무위원)은 국회와 협의하여 과도내각을 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4월28일, 이기붕 일가는 권총자살한 시신으로 발견되었고, 이승만은 경무대를 떠나 사저로 이주했다. 허정이 공석인 국무위원들을 임명함으로써 과도내각이 출범했다. 그런데 대통령 권한대행 허정이 과도내각의 시정방침으로 제시한 것이 유명한 “혁명적 목표를 비혁명적 방법으로 수행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혁명적 목표’란 당시의 격앙된 분위기를 고려한 수사에 불과했고 방점은 ‘비혁명적 방법’에 찍혀 있었다. 체질적으로 허정은 정치적 야심이 많지 않은 온건한 보수주의자였다. 이런 점이 자유당뿐만 아니라 민주당 정치인들에게도 허정을 과도기에 적합한 인물로 보이게 만들었을 것이다. 어쨌든 민주당은 7·29 총선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둠과 동시에 신파와 구파로 나뉘어 각기 딴살림을 차렸고, 8월19일 신파의 장면이 국무총리로 인준받아 제2공화국 내각을 구성하자 결국 보수정당 본연의 반동적인 정책은 본격화하기 시작하였다. 시인 김수영이 1960년 10월30일의 시에서 “혁명은 안 되고 나는 방만 바꾸어버렸다”고 탄식했듯이 혁명은 퇴색하고 정치판은 선수들만 교체된 것이었다. 바로 지금 우리는 낡고 썩은 기득권 독식체제의 ‘신장개업’을 막느냐 못 막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대통령의 즉각 사임이 60일 내 대선이라는 법의 암초에 걸린다면, 대통령이 국민 앞에서 실권 이양을 공공연하게 약속한 가운데 중립적 총리가 국회와 상의하여 한시적 임시내각을 구성하고 그 과도내각의 관리 밑에 내년 봄 ‘조기 대선’을 실시할 수 있을 것이다. 개헌이나 선거제도 개혁 등의 문제들은 대선 때 각 후보들의 공약을 통해 국민들 선택을 묻는 방식도 좋지 않겠는가. ‘집단지성’의 작동이 광범하게 요청되는 시점인데, 그러나 당장 결정적인 것은 ‘국민적 탄핵’의 함성이 박근혜의 귀에 분명하게 들리도록 우리의 목청을 한껏 높이는 일이다. 염무웅 문학평론가, 영남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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