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훈
통일외교팀장
소주잔을 기울이다 헤어지려는데, 그가 내뱉듯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 반드시 끌어내려야 해요.” 전두환부터 박근혜까지 일곱 대통령의 외교 행위를 보좌하며 산전수전을 다 겪은 외무공무원(외교관). 먹빛 얼굴로, 그가 말을 이었다. “정치권에서 내치·외치 나누자고도 하던데, 그거 큰일 날 소리예요. 북한이 군사적 도발을 하면 의도적으로 과잉 대응해 일을 키우려 할 겁니다. 박 대통령은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나는 진짜 걱정돼요. 지금, 박 대통령한테 외치 맡기면 절대 안 됩니다.” 그는 박근혜 정부 4년의 외교를 ‘무능, 무책임, 거짓말’이라는 세 단어로 요약했다.
사정을 아는 사람일수록 ‘박근혜의 외치’를 더 두려워한다. 정세현·이종석 전 통일부 장관 등 ‘통일·외교·안보 분야 전문가’ 42명이 16일, 박 대통령은 “모든 외치에서 손 떼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들은 이렇게 지적했다. “‘외교’는 외유가 아니다. 비선 실세가 골라준 옷을 입고 미소 지으며 패션쇼를 펼치는 자리가 아니다. (…) 안보와 관련된 비밀정보를 ‘오랜 인연을 갖고 있던’ 한 개인과 공유하고, 통일정책을 발표하는 연설문을 사이비종교인이 수정하게 했다면 대통령은 외치를 담당할 능력이 없는 것이다.”
‘그’는 이런 말을 했다. “국내에서도 기자들 질문에 답변을 못하는 사람이 밖에 나가 뭘 하겠어요? 이 정부 들어선 ‘문답 없는 기자회견’이 정상외교를 준비하는 이들의 중요 교섭 과제예요.”
민망한 ‘국가기밀’은 이미 온 우주에 퍼졌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다룬 주요 국외 언론의 기사에 등장하는 단어는 엽기 그 자체다. Robot·Puppet(꼭두각시), Shaman Adviser(무당 조력자), Shamanistic Rituals(굿), Sorcerer Regent(마법사의 섭정), Astrological System(점성술적 체계)…. <파이낸셜 타임스>가 4일치 기사에서 “한국 사회에서 권위와 신뢰를 상실한 그(박 대통령)를, 다른 나라의 최고 지도자 가운데 그 누구도 진지하게 대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전문가의 견해를 도드라지게 전했다. 박 대통령의 정상 외교가 불가능하다는 선언이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한·중·일 3국 정상회의 일정이 확정되면 회의에 참석하러 도쿄에 가겠단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국내적인 이유로 참석을 못하면 많은 손실을 입게 될 것”이란다.(17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박 대통령은 느닷없이 한·일 군사비밀정보보호협정을 밀어붙인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반대가 많아도 나중에 평가되는 경우도 있다”(14일 기자간담회)고, 윤 장관은 “북핵·미사일 위협이 국민이 생각하는 것보다 엄중”(17일 국회 외통위)하다 한다. 이들 눈에 협정에 반대하는 59%(18일 갤럽 조사. 찬성 31%)는, ‘몽매한 백성’이다.
박 대통령과 윤·한 장관의 이런 행태에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드러낸 전대미문의 헌정 파괴, 이를 교정하려는 광화문 광장의 100만 주권자, 3주째 5%에 고정된 대통령 지지율의 헌정사적 의미에 대한 고민은 눈곱만큼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들은, 대한민국이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민주공화국(헌법 1조)이어서, 외교 행위의 근본이 민주적 정당성에 있어야 하는 나라임을 정면 부인한다. 하여 국민에 의해 이미 정치적 탄핵을 당한 박 대통령뿐만 아니라, 주권자의 목소리를 ‘몽매’라 일축하는 윤·한 장관한테서도 ‘대한민국 국무위원’ 자격을 박탈해야 마땅하다.
nomad@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