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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덕기자 덕질기] 수제맥주 병을 신줏단지 모시듯 / 정남구

등록 2016-12-21 18:27수정 2016-12-21 19:18

정남구
논설위원

수제맥주는 열처리(열살균)를 하지 않고, 여과(필터링)를 따로 하지 않는 생맥주다. 그래서 오래 보존하기가 어렵다. 맥주에 따라 다르긴 한데, 에일맥주는 냉장고에 두고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석 달가량 마실 수 있다.

내겐 가장 신경 쓰이는 게 맥주 슬러지다. 1~2주간 1차 발효를 거친 맥주를 병에 옮겨 담을 때 보면 양조통 바닥에 슬러지가 적잖이 가라앉아 있다. 좋지 않은 냄새가 난다. 맑은 맥주를 선호한다면, 2차 발효를 위해 이 맥주를 병(맥주가 빛에 민감하기 때문에 대체로 갈색 병을 쓴다)에 넣을 때 이 슬러지가 섞여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1차 발효가 끝난 맥주를 갈색 페트병에 옮겨 담고 있다.
1차 발효가 끝난 맥주를 갈색 페트병에 옮겨 담고 있다.
하지만 2차 발효를 끝낸 병의 밑바닥에도 역시 슬러지가 조금 가라앉는다. 대부분은 살아 있거나 죽은 효모다. 병 안에서 2차 발효가 끝난 맥주를 냉장고에 넣어두면 맥주가 맑아진다. 여과 대신 저온침전을 하는 것인데, 그래도 가라앉은 슬러지를 제거할 방법은 없다.

맥주는 냉장고에서 병을 꺼내 상온에 잠시 두었다가 마시는 게 좋다. 너무 차가우면 향도 덜하고 거품이 잘 일지 않기 때문이다. 냉장고에서 꺼낸 맥주병의 뚜껑을 갑자기 열면 탄산가스 때문에 폭발하듯 흘러넘치는 일이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슬러지가 퍼져 맥주가 탁해진다. 맥주병이 쓰러져도 비슷한 일이 생긴다. 그래서 수제맥주병을 옮겨갈 때면, 신줏단지 모시듯 할 수밖에 없다. 맥주를 잔에 따를 때 아무리 조심해도 마지막엔 가라앉은 효모가 섞여 나온다. 맥주 효모의 맛과 향기를 실컷 즐기고 싶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병에 조금은 남기고 따라야 한다.

수제맥주의 선구자들은 슬러지를 줄이고 좀더 맑은 맥주를 만들기 위해 여러가지 방법을 고안했다. 맥주를 병에 옮겨 담기 전에 맑은 부분만 다른 통에 옮겨 슬러지를 한번 더 가라앉히는 방법이 있다. 병입하기 전에 양조통을 냉장고에 사흘쯤 넣어 냉장 숙성을 하는 이들도 있다.

맥주와 빵은 비슷한 점이 많다. 7천년 전 수메르인들은 곡물을 가루로 빻아 빵을 만든 뒤, 물을 부어 발효시켜 맥주를 만들었다. 그래서 맥주를 ‘흐르는 빵’이란 별명으로 부르기도 한다. 맥주의 효모 슬러지는 효모빵을 만드는 데 쓸 수 있다.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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