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미르·케이스포츠 재단 모금 의혹 보도에서 대통령 탄핵에 이르는 과정을 관찰하면서 언론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변했다는 것을 실감한다. 심지어 세미나와 회의에서 만난 언론인들은 닉슨 대통령의 사퇴를 가져온 워터게이트 스캔들 보도보다 한국 언론이 더 극적인 영향력을 보여줬다고 자평하기도 한다. 이번 사례를 통해 언론의 정치적 영향력이 검증된 것은 분명하지만 시민이 언론에 보내는 신뢰는 몇몇 매체에만 국한된다. 의미를 두고 싶은 것은 종편에 대해 부정적 태도를 가진 이들 중 적지 않은 시민들이 종편 채널의 민간인 국정농단 폭로 보도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다는 사실이다. 양질의 저널리즘 실천이 매체에 대한 신뢰를 이끌어내는 핵심 변인이라는 학자들의 주장이 구체적으로 확인된 셈이다. 사회적 위기 국면에서 시청률은 해당 언론에 대한 의존도를 보여주는 유의미한 지표이다. 시청률이 신뢰와 등치의 관계에 있다고 말하기 어렵지만 매체 의존도는 이용자가 해당 언론에 보내는 신뢰와 연관이 있다.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시점에서 종편의 시청률은 돋보였다. <제이티비시>의 시청률은 ‘국민의 방송’인 <한국방송>(KBS)보다 높았고 여타 종편채널들도 <문화방송>(MBC)을 넘어섰다(닐슨코리아 자료). 아마도 시청자들은 단순보도가 아닌 탄핵 이후의 불확실성 대처에 유용한 해석적인 정보가 더 필요했던 것 같다. 과거 사회적 위기가 발생했을 때 시민들은 지상파(공중파)에 의존해 정보를 습득했다. 하지만 이제는 적어도 정치 영역에서는 시청자들이 지상파에서 종편 채널로 이동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민간인 국정농단 고발에서 보여줬듯이 종편이 환경 감시 기능 평가에서 상대적으로 더 높은 점수를 받은 셈이다. 이처럼 언론사의 파수견 역할에 대한 긍정적 인식은 매체에 대한 신뢰도 형성에 기여할 수밖에 없다. 해당 매체와의 상호작용이 이득을 가져다준다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탄핵을 인용하면 그로부터 60일 이내에 대통령선거를 치러야 한다. 현재 시점에서 언론은 특검의 수사 상황과 정치 지형의 변화에 주목한다. 전자의 경우 언론의 자율성은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특검 대변인이 발표하는 수사 상황을 속보로 전하는 것 외에는 특별히 덧붙일 게 없다. 반면 후자의 경우 언론은 폭넓은 자율성을 누린다. 그럼에도 언론은 주요 대선 후보 지지율이나 정당 혹은 정치인 간 이합집산이 선거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할 뿐이다. 유권자들이 사회적 정체성이나 지지 정당을 근거로 투표의사를 결정하는 경향이 있으니 이러한 정치 뉴스가 선거의사결정에 참조할 만한 유용한 정보를 담고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선거를 통해 선출된 정부가 항상 여론을 존중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이러한 정치 뉴스는 바람직하지 않다.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국정 운영의 불확실성이 높아졌다. 한반도를 둘러싼 세계외교 상황도 매우 유동적이다. 국가 운영에 필요한 리더십 진단이 절실히 필요하다. 언론이 합리적 의견을 존중하는 정부 선출에 기여하려면 지지율이 아닌 정치 이슈를 주요 의제로 다루어 정당과 후보를 비교하고 평가하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언론의 의제설정 기능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진 시점이다. 언론이 모처럼 맞이한 신뢰 회복의 기회를 저버릴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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