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덕기자 덕질기 1] 외로우니 혼자 걷는다 / 조현

등록 2017-02-01 18:29수정 2017-03-03 10:42

조현

종교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조현 기자가 여신 안나푸르나가 에워싼 황량한 길을 홀로 걷고 있다.
조현 기자가 여신 안나푸르나가 에워싼 황량한 길을 홀로 걷고 있다.
덕기자 덕질기-히말라야 트레킹 체험기1외로우니 홀로 걷는다

여행이 운명론처럼 정해져 있다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뜻하지 않은 사건을 만나면 ‘이것도 하늘의 뜻이려니’ 하고, 항로를 벗어나볼 필요도 있다. 그때부터가 진짜 여행이다.

인도에서 네팔로 들어갈 때만 해도 ‘그 좋다는’ 포카라의 페와호수에서 나룻배나 타며 요양할 셈이었다. 그런데 포카라행 항공편이 기상 악화로 결항이란다. 숙소를 찾던 중 한 청년이 ‘안나푸르나 라운드’를 했다고 자랑한다. 포카라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댓명이 의기투합해 함께 13일간 안나푸르나 5416미터 토롱라를 넘고 200여킬로미터를 완주했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심쿵했다. 설산이 시야에 가득 찼다. 10년 전 달라이 라마 제자 청전 스님과 함께 인도 라다크의 5080미터 싱고라를 넘을 때 너무 무리해 죽을 고생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도 생고생을 까마득하게 망각하고, 설산이란 말에 몸이 먼저 반응한 것이다.

그러나 병이 나 휴직한 몸으로 트레킹을 감당해낼 수 있을까. 하지만 고민이란 안 가면 후회할 것이란 뜻이다. 다만 안나푸르나에 묻힌 산악인 박영석 대장처럼 설산에 묻힐까봐 두렵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두려움을 버리려, 하고 싶은 일마저 버릴 수는 없다. 두려움은 달래며 안고 가야 할 어린아이지 버리는 게 아니다. 여차하면 설산에 묻히리. 찬란한 설산을 거닐다 피라미드보다 수만배나 큰 무덤에 안기는 것을 어찌 불운이라고만 할 것인가. 병석에 누워 죽어가는 것보다는 나은 게 아닌가. 겁 많은 내가 그런 기특한 생각을 다 하다니. 그래 이왕 가는 김에 가이드도 포터도 없이 혼자 가보는 거다.

안나푸르나 초입 베시사하르에서 입산허가증을 발급받고 트레킹을 시작했다. 하산객들이 함박웃음을 짓는다. 등산객은 입대하는 군인처럼 군기가 바짝 들어 있는데, 하산객들은 해탈한 제대병의 표정이다. 내게도 저런 날이 오긴 오는 걸까. 그때부터 걸었다. 먹고 걷고 자고 걷고 또 걸었다.

외롭지 않으냐고? 외롭다. 그래서 혼자 가는 거다. 인간에 대한 지겨움에서 해방돼 인간들을 그리워하려 그리하는 거다. 철다리를 넘은 가토라는 마을에 객은 나뿐이었다. 어둠에 잠긴 로지(숙소)에서 만두와 라면을 안주 삼아 현지 막걸리인 창을 마시는데, 화톳불 가에서 불을 쬐던 야크몰이꾼 둘이서 군침을 흘린다. 그들에게 창 한잔씩을 돌리니, 눈동자에 별빛이 반짝인다. 히말라야에서는 누구나 이렇게 서로 별이 되는 것이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ch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