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촛불혁명을 우선 양적 혁명 단계로 볼 수 있다. 대통령의 터무니없는 부정부패를 시정하고 재벌의 전횡을 개혁하며 블랙리스트 등 전체주의적 작태를 시정하자는 것은 기존의 민주적 가치를 구현하자는 양적 혁명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 그들의 주장을 좀 더 충실하게 제도정치에 반영할 길은 역시 국회에서의 비례대표 확대와 대통령선거에서의 결선투표제 채택이 아니겠는가.
언론인 이번의 촛불시위는 그 규모나 빈도에 있어서 매우 놀랄 만하다. 그래서 그 촛불 국민 평화혁명의 정치이상, 정치철학이 무엇이냐는 문제가 제기되기도 하며 그런 논의에 실제 가끔 마주친다. 혁명에는 그 정치 이념, 이데올로기가 있기 마련이다. 내가 현지에서 경험한 1960년대 후반의 미국은 가히 혁명적이라 할 격동기였다. 흑백분규가 심하게 계속되는 가운데 월남전 개입에 대한 반대운동이 치열했으며 스튜던트 파워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학생 사회도 들끓었다. 일부 진보적 학생들은 맬컴 엑스, 헤르베르트 마르쿠제의 저서에 빠져들었다. 전설적 흑인 지도자 마틴 루서 킹 목사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역사적 연설을 한 것도 이 시대이다. 그 꿈이 정치이상을 말하는 것이며 거기에 정치철학도 담겨 있는 것이다. 그 당시의 준혁명적 사태를 놓고 양적 혁명과 질적 혁명이라는 분석을 제기한 이론가나 언론도 있었다. 양적 혁명은 이미 대부분의 사람이 공유하고 있는 가치들을 실현하자는 것이고, 질적 혁명은 새로운 가치를 모색하자는 것이다. 쉽게 말하여 흑백 구별이 없이 만인에게 똑같이 투표권을 보장하는 것이나 양성평등을 구현하자는 것은 양적 혁명에 해당하고, 새로운 이상사회를 위하여 정책적 실험을 하자는 것은 질적 혁명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지난번 미국 대선 예비선거에서 민주당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추구했던 정치이상은 질적 혁명에 가깝다 할 것이다. 우리의 촛불혁명을 우선 양적 혁명 단계로 볼 수 있다. 대통령의 터무니없는 부정부패를 시정하고 재벌의 전횡을 개혁하며 블랙리스트 등 전체주의적 작태를 시정하자는 것은 기존의 민주적 가치를 구현하자는 양적 혁명에 해당한다 할 것이다. 다만 혁명의 역학이 양적 혁명에 그칠까 하는 것이다. 4·19 혁명 때의 관찰이다. 낮에 경무대를 향하여 노도처럼 밀려들던 시위 학생들은 대개가 평균적인 중산층의 자제들이었고 그들은 경찰의 발포로 피를 흘리고 많은 희생자를 냈다. 그날 밤 일반은 보지 못했지만 색다른 광경이 벌어졌다. 구두닦이, 신문팔이 등 불우청소년들이 떼를 지어 “부정선거 다시 하자, 못 살겠다 갈아보자” 등등의 구호를 외치며 중앙청 근처의 밤거리를 오래도록 행진한 것이다. 그들의 부르짖음은 밑바닥부터 우러난 간절한 것이었고 처절한 것이었다. 딱 부러지게 양분하여 말할 수는 없지만 나는 주간의 대학생 시위에서는 양적 혁명에의 요구가, 야간의 불우청소년 시위에서는 질적 혁명에의 요구가 있었다고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민주주의의 고전적 정의에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가 있다. ‘인민을 위한’에서는 경제 문제가 가장 두드러지게 부각된다. 부익부 빈익빈의 심화는 가히 새로운 봉건적 신분제도를 형성하는 듯한 양상이다. 그래서 재벌개혁이 강조되고 있으며 포용적 성장, 동반성장, 경제민주화 등등의 정책방향이 제시되고 있다. 또한 모델로서는 유럽 모델, 특히 스웨덴이나 덴마크 모델 같은 것이 논의되고 있다. 이렇게 제기된 이야기들을 면밀히 그리고 철저히 연구 검토하여 우리에게 맞는 처방을 찾으려고 하기도 한다. 나는 처방은 어느 정도 분명해졌는데 그것을 실천할 정치적 역량이 갖추어지지 못한 것이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하릴없이 처방만을 놓고 갑론을박을 계속하고 있는 일종의 시끄럽기만 한 ‘바보들의 행진’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인민에 의한’이란 명제에는 비교적 분명한 해답이 나와 있다. 지금의 대통령선거제는 50% 미달이더라도 한 표라도 더 많으면 상대방을 이기는 종다수투표제이다. 민의를 더 충분히 반영하기 위해서는 프랑스 등에서 채택하고 있는 바와 같이 결선투표제를 실시하여 1차 투표에서 50% 이상의 득표가 없을 때는 정당 간의 정책 연합을 통해 2차로 결선투표를 하게 하는 것이다. 또한 지금의 국회의원 선거제는 1선거구 1인제가 주종이어서 극단의 경우 51%가 승자가 되고 49%가 패자가 되는 체제이다. 많은 경우 이른바 ‘가진 자’의 놀이터가 된다. 지난 19대 국회 때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국회의원 정수의 1/3을 비례대표로 하도록 매우 현실적이고도 대담한 제안을 하였으나 국회는 오히려 기존의 의석을 줄이는 역행을 하였다. 국회의원 전원을 비례대표로 뽑는 이스라엘 방식도 있지만 국회의원 반수는 지역구로 나머지 반수는 비례대표로 뽑는 독일의 방식이 우리나라에서도 채택해 볼 만한 합리적인 선거제도라고 본다. 비례대표를 대폭 채택하고 있는 유럽의 정치는 다당제의 정치가 되었다. 국민의 구성이 복잡다양하기에 다당제가 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것을 억지로 선거제도를 통해 양당제로 몰아가는 것이 오히려 무리일 것이다. 다당제 정당제에서는 무지개와 같은 여러 가지 색깔의 정치적 주장이 제기된다. 의회에서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하여 최종적으로는 다수결로 통일된 하나의 정책을 채택하는 것이 이상적이다. “비례는 대표의 원리요, 다수는 결정의 원리”다. 그럴 때 민의는 충분히 골고루 반영되고 최종적 정책결정에 모두가 흔쾌히 승복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비례대표 확대를 통한 다당제가 되는 것은 혼란스럽다고 생각할 측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를 지키는 정당만이 허용될 수 있다는 헌법상의 대전제가 있다. 여기서 주의할 것은 ‘자유롭고 민주적인 기본질서’이지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로 착각하여 좁혀서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만약 미국에 비례대표제가 있었더라면 버니 샌더스의 돌풍은 지나가는 일시적 돌풍으로 끝나지 않고 의회에서 굳건한 의석 기반을 확보하는 정치적 성취를 이룰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앞서 ‘질적 혁명’을 말하였지만 이 질적 혁명의 문제는 생각처럼 쉽지 않고 매우 어려운 과제다. 질적 혁명의 방향이나 내용만을 놓고 논의를 하다 보면 쉽게 풀리지도 않고 한이 없다. 따라서 질적 혁명이 태동할 수 있는 제도적 터전을 마련하는 문제를 먼저 논의하는 것이 실제적이다. 그러한 제도적 토대가 있을 때 어떠한 방향으로든 간에 질적 혁명은 순리적으로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요는 질적 혁명의 내용 논쟁에 빠지기보다는 질적 혁명이 생성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자는 것이며 그것은 비례대표의 확대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래 여러 가지 개헌론이 제기되고 있고 정치개혁이 논의되고 있다. 그중에는 박근혜 게이트를 물타기하려는 저의를 가진 측도 있고 불난 집에서 밤 구워 먹겠다는 식이기는 하지만 선의의 사람들도 있다. 대통령중심제를 예를 들어 내각책임제로 바꾸겠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현명하지 못하다. 남북분단으로 첨예한 국가적 대치 상태에 있고 개혁 과제가 산적한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대통령제의 지도력과 그 역량은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내각책임제는 그러한 상황이 해소되고 난 후에 논의할 장래의 제도로 남겨 두어야 할 것이다. 서양의 속담에 “프라이팬의 뜨거움을 피하려다 화덕 속으로 들어간다”는 말이 있다. 거듭 말하여 헌법이나 정치제도의 개혁에 있어서 비례대표의 확대만한 왕도(王道)는 없다고 보는 것이다. 가령 개헌을 한다면 헌법에 국회의원 정수의 1/3 이상을 비례대표로 한다는 조항을 넣으면 좋을 것이다. 지금 비례대표의 규모는 선거법에 규정되어 있는데 그 중요성에 비추어 헌법에 규정됨이 마땅하다고 본다. 일부에서는 막연하게나마 촛불시위를 주도한 세력을 상설적인 정치세력화 하자는 말이 들린다. 어떤 정치집단으로 조직화한다는 것은 있을 수 있고 이해할 수도 있다. 촛불시위의 동력을 지속시키려는 이들도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그들의 주장을 좀 더 충실하게 제도정치에 반영할 길은 역시 국회에서의 비례대표 확대와 대통령선거에서의 결선투표제 채택이 아니겠는가. 여하튼 양적 혁명의 문제는 분명한데 질적 혁명의 문제는 중지를 모아야 할 우리의 숙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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