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35년 8월 <뉴욕 선>에 달나라 세계를 관찰한 기사와 함께 실린 도판. 터무니없는 얘기가 6부작으로 실리는 동안 신문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출처: 위키피디아
‘가짜 뉴스’ 덕을 봤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주류 매체들을 ‘가짜 뉴스’라고 비난하는 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대선 경쟁에서 중도하차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자신의 ‘순수한 뜻’이 꺾인 원인을 ‘가짜 뉴스’에 돌렸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출처 없이 확산하는 괴담, “모든 언론은 조작”이라 주장하는 극우단체의 선전물 등도 ‘가짜 뉴스’라 불린다. ‘가짜 뉴스’ 전성시대다.
전문가들은 ‘가짜 뉴스’의 역사가 미디어의 역사만큼 길다고 말한다. 8세기 중엽 로마시대 교황의 칙령을 조작한 ‘콘스탄티누스 기증’ 사건을 ‘가짜 뉴스’의 역사적인 사례로 드는 사람도 있다. 인쇄기술 발전 뒤에 태동한 초창기 신문은 일종의 정치 ‘팸플릿’으로, 없는 사실까지 동원해 정적을 비난하고 공격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근대 신문은 자극적인 이야기를 앞세워 대중들에게 구독료를 얻어내는 산업을 만들어냈다. “달을 관측해보니 인간과 비슷한 거주민이 살고 있더라”는 이야기를 6부작으로 실어 온 미국을 들썩이게 한 1835년 <뉴욕 선>의 ‘달나라 보도’가 대표 사례다. 대중매체의 전성기였던 지난 세기 동안엔 전문성을 앞세워 정치적·상업적 이윤을 추구하는 언론에 비판이 쏠렸다. 누구나 뉴스를 만들고 퍼뜨린다는 디지털 시대에는 누구나 거짓을 만들고 퍼뜨릴 수 있게 됐다.
저널리즘은 이처럼 비루한 ‘흑역사’ 속에서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을 메우기 위한 부단한 실천을 동력으로 삼아 발전해온, 무척 겸손한 개념이다. “사실 확인을 통해 진실을 추구한다”는 엄정한 저널리즘의 원칙에 스스로 “십분 충실했다”고 장담할 수 있는 뉴스는 과연 얼마나 될까. 그런 측면에서 “우리가 진짜고 너희들은 가짜”라는 뜻이 담긴 ‘가짜 뉴스’라는 오만한 규정 자체가 무척 불편하게 느껴진다. 오보, 사기, 거짓말, 협박 등 구체적인 문제를 드러내는 데에 더 적합한 표현들이 많다.
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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