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윤승모씨를 처음 만난 건 2000년 무렵, 김대중 정부에서 청와대를 출입하던 시절이었다. 윤씨는 <동아일보> 기자로, 나보다 몇 개월 늦게 청와대 출입을 시작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이른바 조·중·동을 상대로 ‘족벌언론과의 싸움’을 막 시작할 무렵이었다. 그 살벌한 전쟁의 최일선에 윤씨는 서 있었다. 청와대 비서관들은 <한겨레> 기자인 나한테 “윤승모는 동아일보가 보낸 자객”이라고 수군댔다. 윤씨는 칼을 벼리는 대신 운동화 끈을 조여 맸다. 그는 기자실에 출근하면 곧바로 구두를 운동화로 갈아신고 청와대 뒤편 북한산을 올랐다. 전장의 한복판에 어쩔 수 없이 서게 된 기자의 나름의 생존방식인 것 같았다. 그런 특이한 행동으로 우리는 꽤 친해졌고, 그가 신문사를 그만두고 경남기업 부사장으로 옮긴 뒤에도 인연은 지속됐다. 2015년 4월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자살한 직후 윤승모씨 이름을 신문에서 읽었다. 성 회장 지시로 홍준표 경남도지사에게 1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전달했다는 내용이었다. 홍 지사는 펄쩍 뛰었지만, 윤씨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 사실을 인정했다. 정치에서 돈이란 ‘피할 수 없는 덫’과 같다. 그래서 정치자금 관련 범죄는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걸 폭로하는 게 암묵적인 신뢰를 깨는 ‘배신’이다. 정치부 기자를 오래 한 윤씨가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 나는 좀 걱정이 돼서 전화했다. 그의 목소리는 의외로 담담했다. “내가 먼저 나서 공개할 수는 없지만, 기자들이 사실이냐고 묻는데 거짓말할 수는 없는 거 아닌가. 그래도 내가 기자 출신인데….” 그렇게 윤씨는 ‘내부고발자’가 되었다. 돈을 전달한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면, 설령 성 회장이 준 1억원을 “내가 썼다”고만 말했어도 그는 법적으로 무사할 수 있었다. 설암 수술을 받고 항암 치료를 하는 와중에 숱하게 검찰에 불려가는 고통을 당하진 않았을 것이다. 가깝게 지내던 새누리당 인사들과 등을 돌리는 인간적 아픔을 겪진 않았을 것이다. 검찰은 홍 지사를 기소하면서 윤씨도 함께 기소했다. 불법 정치자금을 전달했다는 혐의였다. ‘단순 전달자’는 대개 죄를 묻지 않거나 벌금형에 그친다.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캠프 지시로 이인제 의원 쪽에 5억원을 전달하며 지지를 부탁했던 이병기 전 국정원장도 1천만원의 벌금형을 받았을 뿐이다. 그런데 사주 지시로 1억원을 전달한 윤씨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기소와 재판 과정에서 검찰이 홍 지사 눈치를 보며 몸을 사렸기 때문이라고 윤씨 친구들은 추측했다.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홍 지사는 지난주 2심의 무죄 판결로 극적으로 살아났다. 홍 지사에게 돈을 전달했다는 윤승모씨 진술을 믿기 어렵다는 게 재판부의 판결 이유였다. 홍 지사의 무죄는 곧 윤씨의 무죄가 됐다. 그에게 적용된 정치자금 공여 혐의가 이젠 성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윤씨는 법적 처벌을 감수하면서까지 홍 지사에게 1억원을 전달했다고 ‘거짓 진술’을 했던 셈이 됐다. 구속을 피하려고 돈 준 걸 감추는 사람은 많이 봤다. 하지만 사법처리를 감수하면서, 또 가까운 사람들과 인간적 관계를 끊으면서까지 “돈을 줬다”고 거짓말하는 사람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2심 판결 직후 홍준표 지사는 “누명을 벗었다”며 대선 출마 의지를 내비쳤다. 윤승모씨는 지난해 10월 부동산중개사 자격증을 땄다. 윤씨가 그 일을 시작할 때쯤 홍 지사는 스스로를 ‘정치탄압의 희생양’이라 말하며 전국 유세를 다니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나는 안다, 누가 진실을 말했는지를.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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