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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강신준 칼럼] 85호 크레인의 기억과 사필귀정

등록 2017-03-19 16:51수정 2017-03-19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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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준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희망버스 이후의 반성은 촛불 이후의 과제를 알려준다. 군인과 절대군주의 기념물로 채워진 광화문 광장을 촛불을 기념물로 하는 근대 민주시민의 광장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촛불세력의 지속적인 재생산이 필요하다. 이해당사자가 직접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 사필귀정이 뜻하는 정의의 실현은 정의가 옳아서가 아니라 정의를 실천하는 발길이 이어지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결정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결국 물러났다. 전국의 광장을 밝혔던 촛불도 지난 3월11일을 마지막으로 꺼졌다. 그러나 그것으로 이번 사태가 모두 끝난 것은 물론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듯이 사태의 수습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그래서 촛불 이후에는 기대와 우려가 함께 교차하고 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물러난 박근혜 전 대통령 측에서 불복의 의지를 표명하면서 반전을 노리는 움직임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는 과거 속에 미래의 얼굴이 담겨 있다는 점을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촛불 이후에 참고할 만한 과거를 하나 돌이켜보았으면 한다. 가까이에 또 하나의 촛불이었던 2011년 희망버스가 있다.

이 사건은 부산의 한진중공업에서 노동자 400명을 정리해고하려는 회사 측에 맞서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농성을 하고 이를 응원하는 희망버스가 5차례 조직되어 결국 해고노동자의 복직을 회사가 약속하면서 종료되었다. 그런데 이후 진행된 일은 별로 알려지지 않았다. 눈여겨볼 일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농성 장소였던 85호 크레인이 해체된 것이다. 해체는 김진숙씨가 농성을 풀고 내려온 당일 이루어졌다. 노동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조립을 분해한 것이 아니라 쇳조각으로 잘게 부수어버렸다고 한다. 재조립할 수 있는 상태로는 20억원 이상이 나간다고 알려진 이 크레인은 쇳조각으로 부수어진 바람에 3억원가량에 판매되었다고 한다. 약속 뒤에 숨겨진 회사의 반발을 보여준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회사의 반발이 보다 구체화된 노동조합의 무력화였다. 회사는 노동조합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하여 노동조합 간부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참사를 빚었고 복수노조 금지 조항에 기대어 새로운 노동조합의 설립을 지원하였다. 조합원의 절대다수가 회사 측의 경제적 회유에 떠밀려 기존 노동조합을 탈퇴하고 새 노동조합에 가입함으로써 기존 노동조합은 교섭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이후 계속된 불황 속에 새 노동조합은 교섭력을 발휘하지 못하였고 어렵게 복직된 노동자들의 미래는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투명한 상태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크레인의 해체와 노동조합의 무력화, 되돌아온 고용불안, 이것이 희망버스 이후의 결과이다.

그래서 반성이 필요하다. 이들 사태는 변증법의 진리를 뼈아프게 알려준다. 변화에는 반발이 따르고 변화는 단번에 이루지 않고 반발을 헤치며 꾸준히 이어가야만 비로소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이런 노력을 이어갈 주체는 당연히 현장의 이해 당사자이다. 외부의 희망버스가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변화의 씨앗을 뿌리는 것일 뿐 이후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는 일은 이들 당사자의 몫이다. 그래서 기억을 위해 크레인은 현장에 보존되어야 했고 노동조합의 교섭력은 회사의 반발을 무력화하기 위해 회사 담장을 넘어서야 했다. 모두 초기업 노조인 금속노조의 몫이었다. 하지만 금속노조의 교섭이 노동법과 대기업에 가로막혀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래서 희망버스 이후의 과제는 초기업 노조의 교섭권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곧 노동문제를 노동자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노동 민주화의 과제이기도 하였다.

희망버스 이후의 반성은 촛불 이후의 과제를 알려준다. 당장 세 가지가 눈에 띈다. 첫째, 85호 크레인과 같은 역사적 기념물이 현장에 남겨져야 한다. 군인과 절대군주의 기념물로 채워진 광화문 광장을 촛불을 기념물로 하는 근대 민주시민의 광장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둘째, 반발을 무력화하는 일이다. 기업 단위의 문제였던 희망버스의 해답이 기업의 반발을 무력화시키는 초기업 교섭에 있었듯이 촛불의 해답도 탄핵 반대 세력의 무력화에 있다. 그래서 촛불세력의 지속적인 재생산이 필요하다. 독일의 시민정치교육은 좋은 사례를 보여준다. 에버트와 아데나워 두 재단이 모든 공공교육의 일정 시간을 할애받아 시민들을 교육함으로써 촛불세력을 재생산하고 있다. 셋째, 주체의 민주적 권리이다. 모든 분야에서 이해당사자가 직접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 노동 분야에서 초기업노조의 단체교섭권, 재벌 분야에서 소액주주참여권, 중소기업과 영세자영업 분야에서 동반성장권 등을 대표적으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사필귀정이 뜻하는 정의의 실현은 정의가 옳아서가 아니라 정의를 실천하는 발길이 이어지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걸어가면 길이 된다!” 촛불 이후 잊지 말아야 할 경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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