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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 사람] 한 여성의 노력

등록 2017-03-23 18:25수정 2017-03-23 21:26

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여성 참정권을 최초로 인정한 나라가 어디일까? 그것은 민주주의 확립에 결정적 역할을 한 시민 혁명들을 주도했던 영국이나 미국이나 프랑스가 아니며, 평등을 기치로 내세우는 사회주의 국가들도 아니다. 그 나라는 국제 정치의 중심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 뉴질랜드인데, 한 여성의 집요한 노력이 이끌어낸 결과였다.

영국에서 태어난 케이트 맬컴은 훌륭한 교육을 받으며 자라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몇 년 뒤 어머니는 자식들을 이끌고 뉴질랜드의 크라이스트처치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결혼해 케이트 셰퍼드가 된 그는 아들 하나를 낳은 주부였다. 그러다가 ‘여성 기독교인 절주 연합’과 관련을 맺게 된 일을 계기로 더 큰 활동을 시작했다. 절주 운동에 대한 지지가 주로 여성들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챈 그는 점차 여성 참정권 운동에 관심을 보이며 두각을 나타냈다.

사실 여성 참정권 획득은 당시의 정황에 비춰볼 때 비현실적인 목표일 수 있었다. 그러나 뛰어난 연설가로서 조직 활동에도 능력을 보인 그는 “인종이건, 계급이건, 종교건, 성별이건 분리하는 것은 비인간적이며 극복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우며 자신의 명분에 대한 지지를 쌓아갔다. 1888년 그는 “뉴질랜드 여성들이 투표해야 할 이유”라는 팸플릿을 통해 그 필요성을 논증했다. 1891년 그가 초안을 작성하여 의회에 제출한, 여성의 참정권을 청원하는 법안은 결국 3년이 지난 1893년에 통과되었다. 예상할 수 있겠지만, 이 법안에 대한 가장 큰 반대 세력은 주조업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다. 셰퍼드는 선거인 등록을 독려하여 임박한 선거에서 여성 유권자의 3분의 2가 투표했다.

뉴질랜드에서 여성 참정권을 획득한 뒤에도 셰퍼드는 영국과 미국의 참정권 운동가들과 교류하며 그들을 도왔고, 거동이 불편할 정도로 쇠약해진 뒤에도 계속 글을 써 여성의 권리 확장에 헌신했다. 뉴질랜드의 10달러 지폐에서 그를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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