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 미국의 한 언론인이 워싱턴의 권부를 오래 출입하다가 은퇴할 무렵 한 수상식에서 행한 연설이 머리에 남는다. 연설의 요지는 이렇다. “나는 미국 권력의 핵심부를 주로 취재하였다. 권력이란 신비롭고 매력적인 것이고 그 본질이 무엇인가 호기심이 컸다. 그래서 권력의 심층부를 파고 또 파고들며 관찰하고 생각하였다. 내 결론은 권력의 심층부는 마치 양파 속 같다는 것이다. 파고 또 파고들다 보면 그 과정에서 자칫 타락만이 수반할 뿐 결국 도달하게 되는 것은 허무일 뿐이다.” 나는 그 연설 내용을 당시 한국기자협회가 발행하는 정기간행물 <저널리즘>(1970년 봄호 통권3호 <인사이더 심리>)에 소개했다. 역대 대통령의 많은 경우가 그러했고 가장 최근에 있었던 박근혜 대통령의 참담한 몰락도 그 심층부에 그러한 허무한 진공이 있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경제정책에 있어서 큰 업적을 남겼다고 평가되는 박정희 대통령의 후반기를 관찰해보면 거기에서도 권력 핵심부의 허무를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다. 완전무결한 절대군주 같았던 박 대통령은 그 이면을 살펴보면 어리석게도 권력 핵심부의 수문장인 폭군 차지철 경호실장에게 반쯤의 권력을 나누어주고 그에 의지하였다. 그리고 육영수 여사가 피살되어 가정생활이 없어서이기도 하였지만 이른바 ‘소연’과 ‘대연’을 안가에서 자주 열며 타락한 생활에 빠져드는 허무한 난잡상을 보여주었다.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시대에도 권력 핵심의 허무함을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때의 정치는 군대조직의 상명하복과 같은 것이었으며 그들의 유대는 정치신조에 따른 유대가 아니라 하나회 비밀서클 멤버 간의 유대와 같은 것이었다. 하나회의 그물망 밑은 신념체계가 없는 공허이다. 그래도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시절은 오랜 간난의 정치투쟁의 결정체가 있어서 좀 나았다. 물론 그때에도 정파적인 패거리가 있었지만 그것은 정당정치를 하는 나라에서는 어느 정도 불가피한 것이었다고 본다. 노무현 대통령 시대의 특징을 하나 이야기한다면 이미 형성되고 공인된 상층의 정치인이나 전문행정가들을 제치고 바로 그 밑층에 있는 정치가나 행정전문가, 학계 인사들을 대폭 기용하여 그 자신만의 새로운 정치세력을 형성하려고 기도한 데 있다고 할 것이다. 그렇기에 안전성이나 전문성에 있어서 얼마간의 차질이 없지 않아 있었다. 다만 그렇게 새로운 인물의 층을 발굴하여 중용하였기 때문에 노무현 인맥은 유다른 결집력을 갖게 되었고 오늘날에도 그 인맥이 단결력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노무현씨가 젊은 나이에 비극적 자살에 이른 것은 그의 혜성적 정치 성공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신세계에는 끊임없는 갈등과 불안정감이 존재하였음을 말해주는 것 같다. 단순한 바탕에 교착하는 우월감과 열등감이 있었다 할까. 이명박 대통령은 한마디로 대단한 기업창업가인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아류라고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아류는 본류를 모방하려고 하더라도 같을 수도 없고 따라잡을 수도 없다. 아류는 끝내 아류로 끝난 것 같다. 그가 본류에서 배운 게 토목건축이기 때문에 4대강 사업이라고 하여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 우리의 자연을 파헤쳐 놓은 것밖에 없다. 기억에 남는 것은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싱거운 말뿐이다. 이때 느껴지는 것은 권력의 심층은 양파 속과 같은 진공이라는 표현보다 권력의 심층은 맨땅이었다는 것이 나을 것 같다. 이상의 역대 대통령에 대한 주먹구구 평가는 그래도 암울하지는 않다. 박근혜 대통령에 이르러서는 시대적으로 대단히 후퇴한 사이비 종교 세계의 일단을 본다. 박근혜 대통령의 세계는 오로지 부친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일편단심인 존경과 거기에 결부된 최태민-최순실 부녀의 주술적, 탐욕적 세계가 결합된 치졸하고도 미신적인 세계이다. 내가 서울신문 편집국장으로 있을 때다. 근혜양에게 특별한 감화력과 신통력을 가졌다고 항간에 소문이 자자했던 최태민 목사가 전혀 모르는 사이인데도 불구하고 전화를 걸어와 점심식사를 같이 하잔다. 한국일보사가 있던 중학동의 골목 안 한정식집에서 마주 대하니 첫인상이 무게 있는 목사의 모습은 아니고 경찰 파출소의 나이 많은 주임이나 변두리 퇴락한 교회의 변변찮은 목사의 모습이다. 두 시간쯤의 대화에서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없다. 그렇고 그런 시시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뿐이다. 지나놓고 보니 그런 최태민 목사와 그 딸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그렇게 심대한 영향을 끼쳤다니 이해가 되지를 않는다. 믿음에는 사람마다 각각 다른 동기와 양태가 있어 모를 일이다. 어머니와 아버지를 총탄에 잃고 평생 독신생활을 하는 그에게 형태는 어떻든 어떤 종교나 미신이 따라붙을 수밖에 없을 듯도 하다. 최태민 목사는 최면술을 익히고 있었다는 설도 있으니 모를 일이다. 최태민 목사는 내가 정부 소유 신문의 편집국장이니 자주 만나 세상 돌아가는 정보라도 들으려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추측이다. 오래전에 읽은 제정 말 러시아의 괴승려 라스푸틴에 관한 책에서 보니 라스푸틴은 항상 허름한 시골 승려의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황태자가 앓고 있던 혈우병이 그의 손이 닿으면 그치기도 했다는 이야기. 혈우병은 주기적으로 일정 기간 출혈이 그치기도 하는데 일설에 의하면 라스푸틴은 궁녀와 내통하여 그 시점을 미리 알고 궁에 들어갔다는 것. 자꾸 라스푸틴이 연상된다. 한 가지 중요한 것을 지적하면 박근혜 대통령은 알맞은 언어개념도 사용하지 못하고 소녀적인 단순한 언어의 구사가 빈번할 뿐이다. 언어의 소녀적 단순사용은 이해하기가 쉬운 듯하기도 하지만 복잡한 사회현상에 대한 일방적 이해와 판단으로 정책을 오도하기가 쉽다. 개념이 언어의 자본재라는 것은 그런 뜻도 갖는 것이다. 너무 간단명료하게 소박하게 판단하기만 하면 자칫 극단논법으로 빠지기가 쉽고 복잡한 사회현상에 대한 균형감을 파괴하기가 쉽다. 역사에 있어서 전체주의의 언어는 매우 간단명료한 것이었다. 진보된 복잡한 민주사회의 언어는 그만큼 역시 복잡하고도 단정적이 아닌 많은 조건이 붙는 언어일 것이다. 정치의식의 수준이 그러하기에 최순실과 공모, 뇌물을 챙겼으며 국내 정치를 블랙리스트 등 전체주의적 극우편향으로 몰고 갔고 ‘통일대박’ 운운의 주술적 용어를 사용하며 남북한 관계를 최악의 상황으로 밀어붙인 게 아닌가. 그 권력의 주변에 권력의 마력에 이끌려 많은 출세 지망자들이 부나방처럼 몰려들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그들이 그렇게 탐하였던 권력의 심층은 결국 허무한 진공에 불과하고 그들이 거기에 이르려고 필사의 노력을 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타락만이 있었다는 것을 새삼 뼈아프게 느끼며 후회막급일 것이다. 한편 생각되는 것은 정치학자나 언론인들이 어찌하여 지도자의 정신분석학, 정신병리학적 연구를 소홀히 하였는가 하는 점이다. 권력의 심층은 먼저 말한 미국 언론인의 지적처럼 진공이다. 다만 어떠한 뚜렷한 자기 나름의 정치신념을 갖고 그 성취를 위해 노력하는 것이 소중할 뿐이다. 제2공화국 때 장면 내각의 재무장관을 맡아 정권의 사실상 제2인자였던 김영선씨가 5·16 쿠데타 후 구속되었다가 풀려나와 야인생활을 할 때의 자기 말을 하는 듯한 이야기가 떠오르기도 한다. “정치는 뚜렷한 목표나 신념이 없이 출세만을 위하여 아무나 할 일이 아니다. 정치를 하다 보면 굴곡이 있고 심한 좌절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때 뚜렷한 신념체계가 없다면 타락하기가 쉬운 것이다. 정치를 하려면 어떠한 난관도 감내할 굳은 정치적 신념이 꼭 필요한 것이다.” 그런 그도 오래지 않아 쿠데타 정권의 주일대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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