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형
문화스포츠 에디터
수업료 50펜스.
지난겨울 재개봉한 영화 <빌리 엘리어트>(2000)를 처음 봤을 때 그 감동과는 별개로 엉뚱하게 체육관 수업료가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영화에서 평생 탄광노동자로 살았던 아버지는 빌리의 유약함을 고치기 위해 동네 유소년클럽 복싱교실로 끌고 간다. 그러나 빌리는 같은 장소에서 하던 발레수업에 빠져버린다. 수업료는 1회에 50펜스. 복싱도 발레도 수업이 끝나면 아이들은 이 돈을 내고 집으로 돌아간다.
영화는 대처 정부의 탄광폐쇄 정책과 노조탄압에 맞서 격렬히 저항했던 1980년대 중반이 배경이다. 당시 50펜스를 지금의 가치로 환산해보니 우리 돈으로 2200~2300원 정도. 당장의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집에서 적은 돈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 주변의 가장 흔하고 서민적인 체육교육기관인 태권도장 월 수업료가 대부분 십만원을 훌쩍 넘는 것에 견줘봐도 훨씬 싼 값이다. 사는 형편을 보면 극빈층을 겨우 벗어난 가족이 대부분인데 그 아이들이 복싱을 배우고 발레를 배우는 게 드라마상으로 하나도 어색하지 않다. 이 영화처럼 현실을 날카롭게 묘사하는 한국 영화에서는 찾기 힘든 설정이다. 게다가 이 영화는 탄광촌 출신으로 영국을 대표하는 로열발레단의 캐릭터 솔로이스트가 된 실제 인물인 필립 마스든을 모델로 해 드라마를 덧입혔다.
이는 지역마다 유소년클럽 또는 커뮤니티센터 등으로 이름붙인 문화체육교육기관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성공스토리고 영화상의 설정이다. 문화예술교육이 온전히 사교육의 영역에서 공공의 영역으로 건너온 사회에서 가능한 이야기인 셈이다. 물론 커뮤니티센터 수업만으로 정상에 오른다는 건 불가능하다. 엘리트 교육을 받기 위해 도전한 왕립발레학교 오디션에서 빌리를 빼고는 모두 유복해 보인다. 이런 환경적 제약을 딛고 “새처럼, 번개처럼” 날아오르게 한 첫 도약대는 50펜스짜리 수업이었다.
문화예술교육의 공공성 확보가 단지 빌리 엘리어트 같은 불우한 천재만 발굴하는 건 아니다.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예술적 온기를 불어넣어 팍팍한 일상에 숨통을 틔워주는 기능일 것이다. 몇해 전 우연찮게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린스키극장 발레 공연을 본 적이 있다. 티켓 값이 만만찮고 호화로워 보이는 극장이라 티브이 중계로 보던 빈(비엔나) 신년음악회처럼 귀족적인 분위기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객석을 꽉 채운 관객들의 상당수는 수수해 보이는 중노년층이었다. 한껏 차려입었지만 낡은 흔적을 숨길 수 없는 외투를 벗는 그들의 표정은 더할 수 없이 환했다. 예술의 본질은 호사취미가 아니라 삶의 진짜 기쁨이라는 비밀을 알아버린 사람들만이 지을 수 있는 만족스러운 얼굴 같았다.
국내에서도 주민센터 같은 곳에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 늘어나고 있다. 중장년 스타급 예술인들이 특별한 가정환경에서 특별한 재능을 타고났다면, 김선욱, 손열음, 조성진 등의 청년 스타들은 상대적으로 평범한 환경에서 자랐다. 세상이 바뀌고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여전히 공적인 예체능 교육 프로그램은 수요에 비해 양과 질에서 턱없이 부족하다. 아무리 지자체마다 번듯한 공연장과 미술관을 지어놔도 예술의 즐거움을 직접 체험하고 느껴보지 않으면 찾아가는 길은 멀기만 하다. 문재인 정부는 문화정책 공약 중 하나로 생애주기별 문화예술 향유권 및 교육 확대를 내세웠다. 블랙리스트 청산, 표현의 자유 보장 등 전 정권에서 무너진 문화예술의 기본을 회복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누구나 빌리 엘리어트처럼 성공할 수는 없지만 빌리 엘리어트처럼 행복으로 벅찬 순간을 누릴 수는 있다. 예술을 통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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