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대 경제학과 교수 사실 연공형 임금체계와 기업별 교섭구조는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개정 노동법을 통해 이미 그 생명이 다한 지 오래다. 비정규 노동, 초기업 교섭구조, 사회안전망 등 당면의 노동의제들도 임금체계 개편에서 해법의 열쇠를 찾을 수 있다. 문재인 정부의 가장 불편한 진실은 참여정부의 실패일 것이다. 그러나 이 실패는 상당 부분 국민대중의 착시에서 비롯되었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영화 <노무현입니다>의 흥행과 문 대통령의 초기 행보에 국민이 보낸 적극적인 호응이 그것을 말해준다. 대중은 이명박과 박근혜를 통한 반면교사의 학습을 거친 다음에야 비로소 자신들의 착시를 어느 정도 바로잡은 것으로 짐작된다. 그런데 참여정부와 관련된 이런 착시 가운데 특히 뼈아픈 것으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노동문제이다. 참여정부에서는 대통령과 노동부 장관, 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이 모두 뚜렷이 노동친화적인 인물들로 채워졌지만 역설적이게도 노동쟁의로 구속된 노동자 수는 역대 정부 최대를 기록하였다. 노동계와 정부의 아픈 짝사랑이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비극이 어느 쪽의 착시 때문인지는 아직 제대로 밝혀진 적이 없다. 그런데 새 정부에서 이 짝사랑이 다시 시험대에 오를 모양이다. 경제부총리가 공공부문의 성과연봉제를 노동계와의 합의에 따라 처리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과연 짝사랑이 사랑의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는 선현의 말씀대로 사랑은 오로지 두 당사자의 마음에 달린 것이니 제3자가 그 결과를 쉬이 예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짝사랑을 시험대로 불러낸 성과연봉제에는 객관적 단서가 하나 숨어 있다. 1997년 민주노총 산하 민주금속연맹(지금의 금속노조)은 제도개선연구팀을 구성하고 학자들과 함께 임금체계 연구를 수행하였다. 전노협 이후 민주노조운동의 숙원은 기업별 교섭구조를 초기업 교섭구조로 개편하는 것이었고 임금체계를 그 지렛대로 주목했던 것이다. 연구 결과는 기존의 연공형 임금체계에 직무급과 능률급을 결합하는 것이었다. 연공형 임금체계는 기업별 칸막이 구조 때문에 기업별 교섭구조를 고착화하는 것으로 시급히 개선할 필요가 있었고 칸막이를 제거하는 초기업 임금항목으로 직무급이, 포드주의 이후 유연화된 생산체계에 대응하는 임금항목으로 능률급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일본 노동운동이 초기업 교섭구조의 전환에 실패한 요인으로 연공형 임금체계가 지적되었고, 독일 노동운동의 초기업 교섭력이 직무급과 능률급에 힘입은 바가 크다는 점도 사례연구를 통해 함께 지적되었다. 민주금속연맹은 이런 임금체계를 초기업 협약으로 체결하여 초기업 교섭구조의 초석으로 삼을 계획이었다. 단병호, 문성현, 심상정으로 구성된 지휘부는 수개월 동안 이 협약안을 대의원들에게 집중적으로 교육했다. 이듬해 임금체계 협약을 핵심 교섭요구안으로 삼을 준비를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모든 준비가 끝난 12월 뜻밖에도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가 닥쳤고, 노동계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듬해 노동문제는 온통 노동법 개정과 구조조정으로 뒤덮여버렸고 임금체계 논의는 흔적도 없이 묻혀버리고 말았다. 이후 20년이 흐르도록 임금체계는 더 이상 노동계의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임금체계의 기업별 칸막이는 계속 높아져서 임금격차는 확대되었고 교섭구조의 전환은 전망을 잃었다. 이런 상태에서 성과연봉제가 새로운 시험대로 떠오른 것이다. 먼저 신호를 보낸 쪽은 새 정부이다. 이제 노동계가 화답할 차례이다. 노동계는 지금 매우 어려운 처지에 몰려 있다. 위원장이 감옥에 갇혀 있고 개정 노동법의 족쇄로 조직기능은 저하되었으며 촛불혁명에서도 주변으로 밀려났다. 돌파구가 필요한 노동계로서는 화답의 조건이 무르익은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연공형 임금체계와 기업별 교섭구조는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개정 노동법을 통해 이미 그 생명이 다한 지 오래다. 비정규 노동, 초기업 교섭구조, 사회안전망 등 당면의 노동의제들도 임금체계 개편에서 해법의 열쇠를 찾을 수 있다고 20년 전의 연구 결과는 밝히고 있다. 연구는 두 가지 실행전술을 강조하고 있다. 개편작업은 초기업 단위에서 진행하고 결과는 임금체계 협약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민주노조 진영은 공공, 금속, 보건의료 등에서 이미 초기업 조직체계를 갖추고 있다. 20년 전의 연구 결과와 조직체계, 정부의 선제적 제의… 화답의 모든 조건이 갖추어져 있다. 지금 노동계가 되새겨야 할 금언이 있다. 2000년 전 게르만 방벽 앞에서 아우렐리우스가 로마를 향해 외친 얘기, “지금은 논의를 할 때가 아니라 실천을 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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