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대 경제학과 교수 소수의 ‘나’는 부자인데 전체 ‘우리’는 가난하다. ‘나’의 주머니를 옮겨 ‘우리’의 주머니를 배불리는 일, 그것은 교육을 통한 계급의식의 질적 도약 외에 다른 길이 없다. 어렵게 만들어진 변혁의 계기를 또 한 번의 짝사랑으로 날리지 않으려면 스파르타쿠스의 도전이 필요하다. 1860년대 중반 마르크스는 세 딸과 함께 당시 유행하던 프루스트 문답놀이를 하다 다음과 같은 답을 남겼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영웅은?―스파르타쿠스.” 이 답의 의미는 그가 남긴 변혁의 교과서 <자본>에서 찾을 수 있다. 자본의 축적 부분에 나오는 구절이다. “흑인은 흑인이다. 일정한 관계에서 그는 노예가 된다. 기계는 기계이다. 일정한 관계에서 그것은 자본이 된다.” 자본주의의 변혁이 관계의 변혁에 있음을 가리킨 말이다. 스파르타쿠스는 자신의 족쇄를 주인이 풀어주기를 기대하지 않고 스스로 깨뜨림으로써 관계의 변혁을 시도하였다. 자본주의의 변혁이 노동자 자신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해답을 실천한 역사적 인물이었던 것이다. 스파르타쿠스가 문득 떠오른 것은 지금 우리 사회가 맞고 있는 변혁의 계기와 관련하여 참여정부 시절 정부와 노동의 짝사랑의 기억이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물론 딸깍발이의 주책스런 노파심일지 모른다. 하지만 변혁에 거는 간절한 기대가 그냥 지나치기 어렵게 만든다. 새 정부가 촛불에서 읽은 가장 절박한 변혁이 ‘헬조선’으로 상징되는 노동문제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새 대통령이 인천공항공사 방문이라는 첫 행보에서 보인 것이 비정규직 문제였고 청와대에서 내린 첫 업무지시가 일자리위원회 설치였던 것이 그것을 말해준다. 심지어 경총의 어깃장에 경고를 보내면서까지 정부는 변혁의 의지를 분명하게 보이고 있다. 노동계도 대응의 첫걸음을 떼기 시작하였다. 민주노총은 먼저 일자리위원회 참여를 통해 18년 만에 사회적 교섭에 복귀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어서 6월28일 총파업을 결의하고 세 가지 요구를 내걸었다. 최저임금 1만원, 비정규직 철폐, 노조활동의 권리가 그것이다. 초기 대응 방향을 엿볼 수 있다. 노파심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당장 두 가지가 떠오른다. 첫째 이들 요구는 모두 정부와 국회가 사용자들을 압박해야 하는 것들이다. 이들이 노동자의 이해를 일방적으로 관철할 수 있을까? 새 정부가 노동에 우호적이긴 하지만 노동자 정부는 아니다. 국회도 마찬가지다. 모두 타인이다. 노동계 자신이 할 일은? 당연히 대가의 지불을 요구받을 것이다. 노동계는 지불을 준비하고 있을까? 둘째, 노동계는 어떤 지불능력을 가지고 있을까? 사실 이들 요구는 외부에만 해결책이 있지 않다. 노동계 스스로도 대응할 부분이 있는 것들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1997년 노동법 개정으로 본격화되었다. 노동계는 비정규직과 조직을 통합하고 공동의 교섭전선을 꾸려야 했다. 사회적 교섭을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다. 하지만 조직 통합은 공염불이었다. 최근 기아자동차 노조의 비정규직 분리가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산별교섭도 외부의 방해와 별개로 대기업 노동자의 반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20년이 넘도록 지불능력은 고사하고 그것을 담을 사회적 교섭의 주머니조차 만들지 못한 것이다. 짝사랑의 불안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이다. 불안을 불식할 희망은 없을까? 두 곳이 남아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마르크스가 근대 변혁운동의 특징으로 지적했던 “수적 우위”이다. 민주노총 조합원 수는 70만명을 넘고 조세특례제한법에 의해 전액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는 정치후원금은 1인당 10만원이다. 쉽게 700억원의 정치후원금을 동원할 능력을 갖춘 것이다. 2017년 대선에서 정당들에 지원된 국고보조금 총액이 412억원이었다. 민주노총의 숨겨진 위력을 짐작게 한다. 수적 우위를 활용할 수 있는 수단은 이외에도 산별연금, 산별고용보험, 산별공제 등 무수히 존재한다. 노동진영의 지불능력이 숨겨진 부분이다. 다른 하나는 노동계의 지불능력이 실상은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주머니에 쏠려 있다는 사실이다. 소수의 ‘나’는 부자인데 전체 ‘우리’는 가난한 꼴이다. 로마가 멸망으로 걸어간 길을 그대로 닮았다. ‘나’의 주머니를 옮겨 ‘우리’의 주머니를 배불리는 일, 그것은 교육을 통한 계급의식의 질적 도약 외에 다른 길이 없다. 교육시간의 획기적인 확대로 가능하다. 숨겨진 또 하나의 지불능력이다. 어렵게 만들어진 변혁의 계기를 또 한 번의 짝사랑으로 날리지 않으려면 스파르타쿠스의 도전이 필요하다. 타인에게 기대지 말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에서 출발하는 것, 그것이 관계의 변혁을 향한 첫걸음이다. “노동자 계급의 해방은 노동자 계급 자신의 과업이어야 한다.” 150년 전 마르크스의 말이 절실하게 와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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