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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남재희 칼럼] 박정희 시대의 이런 일 저런 일 ①

등록 2017-07-20 18:03수정 2017-07-20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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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희
언론인

‘미지수’ 민주주의

5·16 쿠데타 후 첫 대통령선거를 취재한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인 나에게 당시 인기있던 <사상계> 잡지에서 대통령선거를 종합하는 원고를 써 달라는 청탁이 왔다. 나는 “박 정권의 공약과 ‘미지수’ 민주주의”라는 제목으로 원고를 써 그것이 사상계 1963년 11월호에 나왔다. ‘미지수’란 이렇게도 저렇게도 되리라는 예측인데 그 후 정보정치, 삼선개헌, 유신의 전제독재라는 나쁜 쪽으로 흐른 셈이다.

KCIA(한국중앙정보부)와의 악연

신문기자 시절 나는 권력과의 관계에서 액운이 끼었던 것 같다. 5·16 쿠데타 때 <민국일보> 정치부에서 혁신정당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혁신진영에 대한 일대 검거 선풍에 말려들어 나도 체포될 뻔했다. 요행히 피하고 늦추었던 군에 입대하였는데 마침내는 506방첩대에 걸렸다. 그러나 혁명의 칼날을 피해서인지 운이 좋아서인지 무사했다. “군에서의 처벌은 법 집행이 아니라 기합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그럴 때는 삼십육계가 최선인 것 같다. 그때의 혁신계 일망타진은 박정희 장군의 공산당 전력 때문에 미국이 의심하고 있어 그 의구심을 불식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는 것이다.

한일회담 반대로 이른바 6·3사태가 일어났을 때이다. 중앙정보부에서 <조선일보> 편집국으로 체포조가 왔는데 그들은 웬일인지 선우휘 편집국장과 정치부 차장인 나, 둘만을 노렸다. 둘은 운좋게 피신해 1개월쯤 숨어 있다가 나타났는데 아무렇지도 않았다. 역시 기합은 피하고 볼 일인가. 그때 <에이피>(AP) 등 외신은 선우 국장과 내가 구속되었다고 보도를 하여 일본의 유명한 모리 교조(森 恭三) 등 지식인들은 두 명을 석방하라는 공동성명, 일본식으로 이른바 ‘아필’을 발표하여 그 전문이 월간 <세카이>(세계)에 한 페이지로 게재되었다. 고맙고도 미안한 일이다. 그때의 한일교섭에 대한 나의 태도는 <한국일보> 사주이자 경제부총리였던 장기영씨의 태도와 거의 비슷했다. 장기영씨는 “이번의 한일교섭 타결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타결이 되었을 때 우리는 반기(半旗)를 내걸어야 한다”는 의미심장한 의견을 말했었다.

필리핀 마닐라에서 한국과 미국을 포함한 정상들의 회담이 있었을 때이다. 외무부 출입 최호 기자의 가십이 너무 정확하여 그 제보자를 알려고 체포령이 내렸다. 그가 잠적하자 정치부장인 나를 연행해 하루 동안 안가(?)에 감금하며 그 기자를 출두케 하란다.

1967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기자들을 각지에 파견하여 선거전 분위기를 연재물로 보도할 때이다. 그 연재물이 마음에 안 들었던지 부장인 나를 포함하여 4명쯤의 기자를 중앙정보부가 연행했다. 그리고 기사 내용과 현지민의 증언을 일일이 대조 조사했는데 오보는 없었다. 당시 중앙정보부의 기자 연행은 보도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처럼 되어 있었는데 김경환 국장이 1면에 2단으로 보도하는 도전을 했다. 여하튼 이틀 밤을 자고 모두 풀려났다.

운좋게 니먼 펠로십을 얻어 미국의 하버드대학에 연수를 갈 때다. 중앙정보부가 여권을 안 내준다. 시한이 아주 임박하여 남산의 본부로 오라기에 갔더니 김형욱 정보부장이 생색을 한껏 내면서 여권을 준다. ‘돈까스’라는 별명을 가진 김 부장은 그때 산천을 떨게 한 무법자였는데 그와 나는 술 시합을 한 경험이 있다.

당시 권력의 실세이던 이후락 청와대 비서실장, 김형욱 중앙정보부장, 김성곤 공화당 재정위원장 등 셋이 <동아일보>, <조선일보>, <한국일보> 세 정치부장과 함께 유명한 청운각에서 술을 마실 때다. 김성곤씨가 김형욱씨와 내 앞의 큰 유리잔에 조니 워커 블랙을 그득 따르며 양측의 술 실력자가 한번 시합을 해보란다. 김형욱씨는 그 큰 잔의 조니 워커를 쉬지 않고 단숨에 들이켠다. 나는 몇 번 쉬어가며 마셨다. 김성곤씨는 다시 그득 따른다. 김 부장이 술잔을 들어 단숨에 마시려 하길래 나는 “술 마시는 모습을 보니 내가 졌습니다” 하고 항복해 참사(?)를 면했다. 김 부장은 언론계의 주당 대표를 이겼다고 더없이 기뻐하고.

중앙정보부에서 <조선일보> 담당자로 상시 머무르며 간섭을 하던 박기식이라는 요원이 있다. 그는 나와는 거의 매일 기사를 놓고 다투었다. 어지간히 끈질기게 싸운 셈이다. 그러던 그가 홀연히 미국으로 이민 가서는 박정희 반대 투쟁의 선봉장으로 이름을 신문 지면에까지 올렸다.

<조선일보> 논설위원 때다. 나는 그때 미국에서 한창 논의되던 청년문화, 스튜던트 파워에 관한 글을 많이 썼으며 <스튜던트 파워>라는 책을 공저로 내기도 하고 대학신문의 자율성에 관한 강연도 여러 번 했다. 그러자 중앙정보부에서 남산의 지하실로 연행, 감금하고 무조건 몽둥이찜질을 하는 게 아닌가. 법률적으로 다룰 죄목이 없었던지 그다음날 아무 설명 없이 석방한다.

창군 초기 어느 장군의 초상

“손바닥만한 나라에서 동창회들이 똘똘 뭉치면 이 나라 망해요. 동창회란 명부나 내고 동창들이 어디 있겠거니 하고 알면 되는 거예요.” 동창회장에 추대된 민기식 전 육군참모총장은 이와 같이 수락 인사를 말하여 일부 동창을 실망시켰다. 그러나 나는 그 탁 트이고 수준 높은 말에 감탄하였다.

그가 제2군단장으로 있을 때 5·16 쿠데타가 일어났다. 부관이 급보를 전하자 그는 이한림 제1군사령관의 태도는 무엇이냐고 물어 사령관이 반대 입장이라고 말하자 즉각 “그러면 나는 찬성이지”라고 했다. 둘 사이의 사감이 깊었던 모양이다. 그 후 그는 탄탄대로를 걸었다. 초기의 장군들은 정규 육사 출신들과는 달리 출신이 제각각이고 사실상 위계질서도 엉성했다.

유신 중엽에 그는 신당동 집에서 동료 국회의원, 정부 고관, 신문기자들을 초청하여 큰 파티를 열었다. 술판의 막판에 그는 “박 대통령 왜 평생 해먹으려고 해. 김영삼이 개헌하자는 이야기가 옳아”라고 말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런 발언을 자주 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중앙정보부가 그를 연행했다. 그러나 전직 육군참모총장이고 현직 국회의원인 그를 구속할 수 없었다. 정보부는 꾀를 내어 만취 상태의 실언으로 돌리고 박 대통령에게 보내는 사과편지를 받아내는 선에서 끝냈다. 얼마 후 속리산관광호텔에서 회식이 있을 때다. 박, 민 두 사람은 방을 옮겨다니며 술을 마셔댔단다.

신군부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다. 그는 “몽땅 정보장교들이 일으킨 쿠데타인데 정보장교들은 문제가 있다. 그들에게 협력해서는 안 된다”고 순수 야전군 출신다운 말을 했었다. 그러나 시일이 지나자 “역시 그들밖에…” 하고 협력하기에 이른다.

대통령 직선제가 되었을 때 그는 그의 밑에서 여러 번 부사령관을 지낸 정승화 장군과 함께 박준규씨 등 경북 출신 정치인들과 제휴하여 김영삼 지지에 나섰다. 그러나 얼마 있어 박준규씨 등은 노태우 후보 지지로 돌고 그도 주저앉고 하여 정승화 장군만이 끝까지 김영삼 지지로 일관했다.

가짜 김일성 장군에 대한 관심

북한의 김일성이 진짜 항일투쟁을 한 장군이냐, 다른 항일투쟁 장군들의 이름을 사칭한 가짜냐는 논쟁이 진행되고 있을 때다. 청와대에서 있었던 몇몇 논설위원 모임에 가짜설의 주창자인 <경향신문>의 이명영 위원도 참석하여 그 주장을 제기하였다. 박정희 대통령도 큰 관심을 갖고 그 논란에 말려들었다. 그는 일본 육사를 졸업하고 독립운동 진영으로 넘어간 두 명쯤의 인사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했다.

이명영씨는 박 대통령에게서 연구자금을 두둑이 받아 일본 등 외국까지 왕래하며 자료수집을 했는데, 한번은 나에게 “이 금딱지 시계도 그 연구자금에서 산 것”이라고 보여준다. 그 후 이씨는 한 신문에 그 연구결과를 연재하고 김일성이 여럿이라는 뜻의 <김일성 열전>이라는 책까지 냈다. 김일성에 관해서는 1937년 함남 갑산에 있는 보천보 습격 사건 때의 김일성부터는 해방 후에 나타난 김일성과 동일 인물이라는 것이 학계에서는 그 당시도 유력한 주장으로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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