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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덕기자 덕질기 5] 단팥빵-만들기에도, 먹기에도, 먹이기에도 좋은 / 최원형

등록 2017-08-23 19:18수정 2017-08-23 21:02

최원형
책지성팀 기자

<돈가스의 탄생>(2006)은 ‘돈가스’라는 전혀 새로운 음식의 탄생을 중심에 놓고 서양 음식이 어떻게 일본에 정착했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는 책이다. 내용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육류 섭취에 거부감이 있었던 일본 사람들이 서양식 고기 요리를 밥과 함께 먹을 수 있는 일본식 고기 요리로 재탄생시켰다는 얘기다. 단팥빵이 만들어진 역사도 나온다. 돈가스가 일본식으로 재탄생한 고기 요리의 대표 선수라면, 단팥빵은 일본식으로 재탄생한 빵의 대표 선수이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에 구운 단팥빵. 구울 때마다 실력이 조금씩 늘고 있다고 스스로 느낀다.
가장 최근에 구운 단팥빵. 구울 때마다 실력이 조금씩 늘고 있다고 스스로 느낀다.

쌀밥을 주식으로 삼는 식문화 속에서 빵의 위치는 늘 애매하다. 빵은 16세기에 일본에 처음 전해졌지만 큰 관심을 끌지 못했고, 19세기가 되어서야 널리 퍼졌다. 1874년 기무라 야스베에란 사람이 6년 동안 고심해 만들어낸 단팥빵은 주식이 아닌 일본식 ‘단과자빵’의 시초였다. 그는 이스트 대신 쌀누룩종을 써서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특유의 맛을 살렸고, 빵 반죽에 설탕과 달걀을 듬뿍 넣어 ‘화과자’처럼 단맛을 냈다. 중국에서 건너온 찐빵에 착안해 빵 속에 팥소도 넣었다. 밀가루 반죽을 쪄낸 빵은 식으면 딱딱해졌지만, 서양 빵처럼 부풀려 구워낸 빵은 식어도 특유의 부드러움을 유지한다는 장점이 있었다.

팥소 안에 견과류를 많이 넣고 빵 위에 검은 깨를 뿌린다.
팥소 안에 견과류를 많이 넣고 빵 위에 검은 깨를 뿌린다.

단팥빵은 즐겨 굽는 빵이다. 어렸을 때부터 자주 먹어서 애착이 가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만들었을 때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부담스럽지 않게 먹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빵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도 단팥빵에는 그리 큰 거부감을 갖지 않는 경우가 많다. 빵소가 크림이나 치즈 따위가 아닌 단팥이라는 점도 장벽을 낮추는 중요한 요소이리라. 그럴 때마다 이 빵이 지닌 오묘한 탄생의 역사를 떠올리곤 한다. 심지어 만드는 과정에서도, 팥소를 채우고 반죽을 봉합하면서 ‘이건 왠지 만두를 빚는 것 같다’고 혼자 생각해보곤 한다.

오븐 안에서 익어가는 단팥빵 반죽들.
오븐 안에서 익어가는 단팥빵 반죽들.

구울 때마다 실력이 조금씩 늘어서, 최근에는 “돈 받고 팔아도 되겠다”는 소리도 듣는다. 그럴 때마다 언젠가 티브이에서 봤던 꽈배기와 찹쌀도너츠의 ‘달인’을 떠올린다. ‘달인’ 이야기에는 늘 자신의 일에 온갖 정성을 들이는 사람들이 나오지만, 그 주인공은 정말 남달랐다. 좋은 재료를 잘 쓰는 수준을 넘어서, 아예 빵에 들어가는 팥과 밀을 자기 밭에서 직접 재배까지 하고 있었다. 모든 재료를 자신의 손으로 키우고 만들어 끝내 하나의 종합적인 결과물을 창조해낸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어쩌면 인간이 신이 될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돈 받고 팔면 어떨까’, ‘제빵으로 인생 2모작을 해볼까’ 따위의 얄팍한 마음들이 저절로 사라져간다. 지금은 빵 만드는 것을 오롯이 즐기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circl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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