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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 사람] 종교인도 국민!!!

등록 2017-08-24 18:42수정 2017-08-24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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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17세기 초입 로마의 교황청과 베네치아공화국 사이에는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았다. 교황의 특권을 강화하려던 교황청의 시도가 번번이 베네치아공화국의 반대로 무산되었기 때문이다. 베네치아에서는 법을 위반한 두 명의 성직자를 시민법정에 세웠고, 국가의 승인을 받지 않은 교회의 설립을 막았으며, 성직자나 종교단체의 재산 소유를 금지했다. 교황청에서는 베네치아 사람들에게 교황청에 무조건 복종하라고 명했으나, 공화국의 원로원에서는 이 상황에서 공화국에 도움을 주는 성직자들을 보호할 것이라 약속했다.

역사가이자 법학자였던 파올로 사르피가 교황청의 위협에 대처하는 방안을 글로 썼다. 교황청의 명령을 출판 금지할 것이며, 귀족들의 전체회의에 이 문제를 상정하라는 것이었다. 교황 바오로 5세는 베네치아 성직자 몇 명을 파문에 처하고 공화국 전체에 성무를 금지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그러자 사르피가 더욱 강력한 논지를 들고나왔다. 교회도 국가의 일부이므로 성직자는 교회가 아닌 국가에 복종해야 한다는 논지를 내세우며 그는 15세기의 반교황파 법학자 장 제르송의 견해를 다시 출판하기도 했다. 그는 교황이 세속의 문제에 개입하면 안 된다는 원칙을 천명했다. 베네치아에서는 대다수의 성직자들이 교황청의 성무 금지 명령을 무시했다.

결국 에스파냐와 프랑스까지 개입하여 이 문제는 외교적으로 해결되었다. 그러나 교황청에서는 사르피를 방관할 수 없었다. 그는 암살의 대상이 되었다. 그는 자객들의 칼에 열다섯 군데를 찔렸다. 죽음을 확신한 자객들은 거사에 성공했음을 알리며 교황청에 보무당당하게 입성하여 환대를 받았다. 그러나 사르피가 살아났다는 소식에 그들은 경악했다. 사르피는 오늘날 공화주의를 확립한 영웅으로 받아들여진다.

제정 분리의 원칙은 이렇듯 어렵게 확립되었다. 교회의 과세 금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느 시대의 유물인지 분간조차 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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