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박김형준 사진가
구술생애사 <할배의 탄생> 저자 “누구라도 와서 살겠다고 하면, 게르(몽골 유목민의 이동식 가옥) 하나를 지어주고 먹을 것도 나눠 줄게요.” 지난 8월 몽골·바이칼 여행 중 만난 몽골의 한 유목민 여성이 건넨 말이다. 맑고 당당한 눈빛과 목소리의 중년여성과 그녀를 졸졸 따라붙는 네 살 손녀. 몽골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대학을 나와 일본 유학을 다녀온 후, 환경지킴이 공무원으로 다시 유목생활을 하고 있단다. 늑대 사냥꾼이었다는 남편은, 불법 사냥을 막는 환경지킴이 여자에게 잡혀 결혼까지 했다며 수줍게 웃었다. 광야와 대초원에서 소와 말과 양과 염소와 낙타와 함께 태어나고 자라면, 마음 바닥에 무엇이 담기는 걸까. 몽골 풍장(風葬)의 기원과 의미를 떠나, 평생 육식을 한 사람이 시신을 바람에 널어 동물의 먹이로 주는 것은 마땅하다. 풍장의 불법화는 문명의 허울이자 퇴행이다. 나이 든 사람들의 패키지 해외여행은 온갖 이러저러하다는 유적지들 방문으로 채워지기 일쑤여서, 나로서는 궁금할 게 없다. 필요하면 인터넷을 뒤지면 된다. 그럼에도 해마다 패키지 여행을 포기하기 못하는 건 공짜여서다. 매번 내 여행비까지 대주는 오빠와 올케언니 덕이다. 각별한 지식과 기대가 없으니 준비도 없다. 일정만 비워 짐을 챙기면, 공항과 집 사이 전철비만 든다. 그저 멈춤이자 일탈이어서 모처럼의 돈맛으로 낯선 것들을 즐긴다. 유적지마다 붙는 역사나 해설은 누가 누구를 위해 기록한 역사인가에 대한 혐의로 별 관심이 없다. 차라리 건축과 전쟁과 거사에 노동력과 병력으로 차출되어, 휘말리며 굴종하고 버텨낸 백성들이 궁금하다. 그 흔적은 찾을 길이 없어 현재 이 거리의 소소한 사람과 집과 풍경들을 잠깐이라도 마음에 담았다 흘린다. 이번 여행은 대초원과 광야와 바이칼호가 있어 모처럼 마음이 동했다. 자본이 만드는 획일화가 아직 밀려들지 않은 자연과 사람들을 보고 싶었다. 게다가 모든 패키지에도 별미는 있으니, 단체 일정 없이 혼자 걷는 새벽 거리다. 몽골에서는 새벽마다 초원과 광야를 하염없이 걸었다. 심심했던 소들이 낯선 종족을 반겨 다가왔다. 시베리아의 한여름이라니. 러시아 이르쿠츠크의 새벽들은 호텔 뒤쪽 동네를 걸었다. 개인주택의 창문과 벽들은 전통문양 그대로였다. 공동주택의 내 또래 청소원 아주머니는, 목에 건 내 이름표의 국적과 이름을 더듬거리며 경비실로 이끌어 차를 내주었다. 몽골과 러시아의 국경을 넘어, 시베리아 횡단열차로 이르쿠츠크를 가는 동안 만나는 바이칼호 정경. 자작나무 숲과 마을과 집과 살림살이와 목축과 사람들. 바이칼호의 유일한 출구 안가라강을 거슬러 닿은 바이칼호와 그 안의 올혼섬. 모래사장에서 놀던 서너 살 꼬마들은 낯선 사람의 몸짓 하나에 선뜻 카메라 포즈를 잡았다. 출생과 함께 주어진 정체성들, 눈동자와 피부색과 언어의 다름이 아이들에겐 신기할 뿐이다. 그 차이들을 갖은 경계로 막아 국가와 민족과 인종과 체제를 확장하는 전쟁과 살생을 만들고 역사를 기록한 지배자들. 어느 민족 어느 역사든, 성별이라는 가장 큰 범주의 인종차별로 지탱되는 내부. 오물(Omul, 바이칼호 특산 민물고기)이 담긴 비닐봉지를 든 만취한 할아버지. 그에게서 지난겨울 광화문의 ‘태극기 노인’들이 떠올랐다. 대한민국의 수구 할배와 러시아의 ‘소보크’(소비에트 시절의 사고방식과 말을 하는 노인들을 비하하는 속어, ‘호모 소비에티쿠스'의 약칭)는 상반된 체제가 만든 슬픈 쌍생아다. 여행 동안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미사일 핵무기 공방은 최고조였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사설] 노동자 안전 뒷전 중대재해법 후퇴가 민생 대책인가 [사설] 노동자 안전 뒷전 중대재해법 후퇴가 민생 대책인가](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300/180/imgdb/child/2024/0116/53_17053980971276_20240116503438.jpg)

![[올해의 책] 숙제를 풀 실마리를 찾아, 다시 책으로 ①국내서 [올해의 책] 숙제를 풀 실마리를 찾아, 다시 책으로 ①국내서](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800/320/imgdb/original/2023/1228/20231228503768.jpg)
![[올해의 책] 숙제를 풀 실마리를 찾아, 다시 책으로 ②번역서 [올해의 책] 숙제를 풀 실마리를 찾아, 다시 책으로 ②번역서](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original/2023/1228/20231228503807.jpg)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212/127/imgdb/original/2025/0212/20250212500150.webp)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212/127/imgdb/original/2025/0211/20250211502715.webp)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http://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212/127/imgdb/original/2025/0211/20250211503664.web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