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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문화 현장] 제목은 유보 / 박보나

등록 2017-09-07 17:48수정 2017-09-07 21:01

박보나
미술가

지난 주말 남산예술센터에서 서현석 연출의 <천사-유보된 제목>에 관객으로 참여하였다. 이 공연에는 한 회당, 한 명의 관객만 입장할 수 있다. 관객은 가상현실을 체험하는 장비를 쓰고 극장 앞까지 걸어간다. 극장에 들어가기 직전에 이 장비들을 벗는데, 극장 안에서의 상황이 실재인 동시에, 가상현실의 연장이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주기 위한 연출 의도라고 짐작할 수 있다. 이 공연에는 단 한 명의 배우만 출연하며, 이 배우는 관객에게 극장 구석구석을 안내한다.

<천사-유보된 제목>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지점은 관객이 나 혼자였다는 사실이었다. 텅 빈 극장에 천사로 짐작되는 배우와 단둘만 있는 경험은 꽤 특별했다. 내 자신과 내가 서성이는 극장 공간에 대해 오롯한 집중이 가능했다.

극장에 들어가서 텅 빈 무대 앞의 아무도 없는 객석에 잠깐 혼자 앉아 있었다. 불이 꺼졌다 다시 켜지면서, 멀리 맞은편에 긴 생머리에 흰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나타났다. 천사 역할인 듯한 이 배우는 천천히 일어나서 슬금슬금 내 쪽으로 다가왔다. 배우가 다가오는 속도가 긴장됐고, 일관된 침묵이 불안했다. 나도 일어나서 같이 다가가야 할까, 인사라도 건네야 하나,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공연 내내, 침묵과 분절된 신호 속에서, 우리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오해를 반복했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가까운 거리에서 배우의 소소한 제스처를 지켜보는 것이 불편했다. 계속 쳐다보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딴청을 피우자, 배우가 간절한 눈빛으로 쉭쉭 소리를 보내며 나의 시선과 관심을 요구했다. 한편, 나는 배우에게 실없는 농을 건넨다든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여서 배우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다는 욕구에 시달렸다. 공연이 끝나니, 왠지 고약한 관객의 역할을 한 것 같아서 배우에게 미안한 감정마저 들었다. 다른 연극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배우에 대한 사사로운 감정과 상호 긴장감이 사뭇 새로웠다.

서현석, <천사-유보된 제목>, 남산예술센터, 2017.
서현석, <천사-유보된 제목>, 남산예술센터, 2017.

배우는 내러티브를 끌어가는 스펙터클한 연기 대신에, 무대 뒤의 가려져 있던 극장 공간을 보여준다. 분장실이나 창고, 비상계단 같은 공간은 천국인지 폐허인지 알 수 없게 연출된 오브제들로 무심하게 채워져 있다. 날개도 걸려 있고, 깃털과 작은 목마도 있고, 휠체어랑 더러운 욕조도 있다. 엉성하게 나열된 오브제들은 구태의연해서, 어떠한 환영도 만들어내지 않는다. 천사에 대한 이 닳고 닳은 클리셰들은 관객의 시선을 오브제에서 극장의 구조로 돌리고, 나와 배우의 실존감을 더욱 부각하는 장치로 작동한다.

오브제들 사이로, 남산예술센터 건물의 세월감과, 객석에 붙은 좌석 번호의 색, 분장실의 낮은 천장, 그리고 그 천장의 포슬포슬한 재질 등을 새삼 잘 볼 수 있었다. 배우의 치맛자락 얼룩도 잘 보였다. 극장의 오래된 공기와 섞인 메케한 스모크와 바람 때문에, 계속 기침이 나왔다. 끊임없이 극장을 울리는 내 기침만이 나의 물리적 실재를 또렷이 증명해주는 것 같았다.

이 공연은 연극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연극은 배우와 관객 사이의 경험’이라는 조촐한 관점을 제시한다. 화려한 서사나 명확한 의미를 전달하려는 목적이 없기 때문에, 이 공연을 해석하려는 시도는 부질없어 보인다. 이 공연에서 의미는, 제목처럼 유보되어 있다. 따라서 관객은 천사인지 악마인지, 연기인지 실재인지, 예술인지 폐허인지, 현실인지 가상인지를 끊임없이 질문하면서, 그저 자유롭게 느끼고 적극적으로 사유하면 된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아무것도 가리키지 않기 때문에, 관객의 감각은 더 예민해지고, 생각은 더 확장된다. <천사-유보된 제목>처럼, 연극은 무엇인지, 미술은 무엇인지, 매체의 본질을 고민하는 작품을 경험하는 것은 즐겁다. 예술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에서,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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