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7년 10월28일, 시나리오 작가 돌턴 트럼보가 아내와 함께 미국 의회에서 만든 ‘반미활동조사위원회’에 출석한 모습. 출처 위키미디어
영화 <트럼보>(2016)가 잘 보여준 대로, 돌턴 트럼보(1905~1976)는 “펜이 권력보다 강하다”는 것을 자신의 삶으로 입증한 인물이다. 할리우드 스타 작가인 그는 ‘매카시즘’ 광풍의 희생자였다. 미국 의회는 1947년 ‘반미활동조사위원회’(HUAC)를 만들어 학계, 언론계, 예술계 등을 들쑤시며 ‘공산주의자 색출’에 열을 올렸는데, 할리우드에서도 극작가, 배우 등 43명이 위원회에 불려나가 공산당 가입 여부 등을 추궁당했다. 트럼보를 포함한 10명은 ‘헌법에 어긋난다’며 증언을 거부해, ‘할리우드 텐’이라 불리며 ‘빨갱이’로 낙인찍혔다. 당시 영화산업계는 “이들을 해고하고, 다시 고용하지 않겠다”며 공개적인 ‘블랙리스트’를 선언했다.
밥줄이 끊긴 트럼보는 동료의 이름으로 발표해야 했던 <로마의 휴일>(1953) 이후 가명을 쓰며 싼값으로 다시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할리우드는 트럼보의 정체를 알면서도 그를 찾았고, <브레이브 원>(1956), <영광의 탈출>(1960), <스파르타쿠스>(1960) 등 그의 작품은 대중들로부터 폭넓은 사랑을 받았다. 결국 ‘블랙리스트 작가’라는 사실 자체가 무의미해졌고, 세상은 그의 ‘커밍아웃’을 받아들인다.
“블랙리스트가 결국 ‘조크’(농담)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줬다”는 한 기자의 말에, 트럼보는 정색하고 이렇게 말한다. “난 블랙리스트의 공포와 잔인함을 봤다. (…) 남의 이름으로 받은 오스카상은 내 친구들의 피로 물들어 있다.” 트럼보의 반격 자체는 신나고 통쾌하지만, 거기 남은 것은 절망과 회한뿐이다. 수많은 사람의 내면과 실제 삶의 기반을 파괴했을 뿐 아니라 전체 사회 구성원들에게 원치 않는 일을 강요했다는 점에서, 블랙리스트는 공동체의 정신을 말살한 끔찍한 범죄였다. 끝까지 발본색원해 다시는 비슷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제대로 역사에 새겨야 한다.
최원형 책지성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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