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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조한욱의 서양 사람] 안개 속의 풍경

등록 2017-10-19 18:15수정 2017-10-19 18:59

조한욱
한국교원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

땅에서 솟아오른 듯, 하늘에서 내리꽂은 듯 그리스 중부의 테살리아 평원엔 엄청난 높이의 기암들이 박혀 있어 눈을 놀라게 한다. 꼭대기마다 세워진 그리스 정교의 수도원에 이르면 말은 의미가 없어진다. 그 놀라운 메테오라에서 내려와 관광객 대상의 기념품 가게에서 또 다른 놀라움을 만났다.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가게의 주인은 그리스 문화의 찬란함에 경탄하는 나에게 고대 그리스가 싫다고 말한다. 관광객들은 플라톤과 페리클레스의 그리스에 감탄하지만 그 밖의 그리스에 대해선 무얼 알고 있는가 힐난하는 것이다.

그것이 그만의 독특한 생각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상당히 널리 퍼진 견해였다. 그리스 근현대사의 비극을 알고 있느냐고, 알아달라고 절규하는 그리스 사람들은 대단히 많았다. 기차는 8시에 떠난다는 미키스 테오도라키스가 그러했고, 조르바를 춤추게 한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그와 함께했으며, 일요일엔 안 된다는 멜리나 메르쿠리도 같은 무리였다. 테오 앙겔로풀로스를 이 명단에서 제외시킨다면 그는 아주 섭섭해할 것이다.

영화를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로 갔지만 제대로 된 영화를 만들기 위해 그리스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던 앙겔로풀로스는 그리스의 역사에 충실했다. 그 역사는 “대령들의 정권”의 현대사일 뿐만 아니라 오디세우스의 고대사이기도 하다. 고대 민주주의의 근원지였던 아테네가 독재에 찬탈된 것을 보며 그의 투쟁의 시선은 과거로 회귀한다. 그렇지만 투쟁의 시선이란 궁극적으로 미래를 향하는 것. 시간이 움직이지 않고 공간이 흐르지 않는 반복을 보이기 위해 그는 아주 멀리서 바라본다.

멀리서, 아주 멀리서 보면 시공은 얽혀 있다. 나는 영화 <안개 속의 풍경>에서 <율리시즈의 시선>을 통해 <유랑극단>을 본다. 진보여, 그대는 윤회다. 시간이여, 그대는 장소다. 기억이여, 그대는 미래다. 테오 앙겔로풀로스를 통해 (덧붙여 코스타 가브라스를 통해) 나는 그리스의 오늘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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