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대 경제학과 교수 마르크스는 이미 우리 곁에 돌아와 있다. ‘마르크스 재장전!’- 1959년 고데스베르크 강령에서 마르크스를 폐기했던 독일 사민당의 기관지가 이번 달 특집으로 내건 제목이다. 그렇다면 촛불 1주년의 우리에게 마르크스는 무엇일까? 1917년 11월7일 볼셰비키 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로부터 100년, 러시아 혁명을 돌아보는 심경은 복잡하다. 그 혁명에 걸었던 간절한 소망은 여전히 미완의 과제로 남아 있는데 혁명은 분명 실패했기 때문이다. 혁명의 실패는 1991년 소련의 붕괴로, 미완의 과제는 2008년 경제위기로 모두 현실에서 확인되었다. 서로 마주 선 이들 두 사건에 담긴 공통분모는 바로 마르크스이다. 그래서 전자에 대해서는 “역사(마르크스)는 끝났다!”는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주장이, 후자에 대해서는 “마르크스가 역시 옳았다!”는 페어 슈타인브뤼크의 선언이 뒤따랐다. 21세기의 지금 우리는 두 개의 마르크스와 만나고 있는 것이다. 실패한 마르크스와 돌아온 마르크스다. 이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이 문제는 촛불의 시대적 전환점을 맞고 있는 우리에게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 전환은 과거의 종결이자 미래의 시작이고 두 개의 마르크스는 바로 이런 이중적 의미를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이다. 실패한 마르크스는 청산할 과거를, 돌아온 마르크스는 새로 만들어갈 미래를 가리킨다. 그런데 바로 그 마르크스는 과거와 미래가 서로 단절된 것이 아니라 현재를 매개로 이어져 있으며 과거는 미래의 필연적 전제라는 점을 논증하였다. 그는 청산할 과거를 “죽은 개”처럼 그냥 치울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반성의 소재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던 것이다. ‘지양’이라는 개념이다.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적폐를 그냥 폐기하고 끝낼 것이 아니라 그것이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반성하고 그런 반성 위에서 미래를 설계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실패한 마르크스를 어떻게 청산해야 할까? 흔히 러시아 혁명의 평가는 단순한 긍정과 부정으로 극명하게 갈라진다. 둘 다 근거가 있다. 혁명의 성공과 실패가 모두 팩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둘은 서로 별개의 것이 아니다. 모든 팩트의 현재에는 누적된 과거가 포개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물을 입체적으로 파악해야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 바로 변증법의 교훈이다. 그런 점에서 성공도 실패도 모두 러시아 혁명 그 자체라는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성공했으면서 동시에 실패한 것이다. 그래서 러시아 혁명의 청산은 그것이 함께 지닌 성공과 실패의 관련을 정확히 파악해야만 미래를 위한 반성으로 연결된다. 무엇이 러시아 혁명의 성공을 가져왔고 또 그것을 실패로 이끌었을까? 성공 요인은 쉽게 찾을 수 있다. 롤 모델이었던 프랑스 혁명을 그대로 따랐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수의 의지’다. 프랑스 혁명이 민주주의를 열었던 것을 가리킨다. 러시아 혁명도 다수의 의지(농민과 노동자)를 대표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실패로 몰아간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이 추종한 마르크스에게 답이 있다. 의지와 현실 사이에는 간격이 존재하고 이 간격을 좁히지 못하면 의지는 현실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바로 유물론의 교훈이다. 실제로 이 문제를 둘러싼 논쟁도 있었다(프롤레타리아 독재 논쟁). 혁명의 다수 의지와 러시아의 현실 사이에는 화해하기 어려운 간격이 놓여 있었고 혁명은 거의 한 세기 동안 끝내 이 간격을 좁히지 못한 것이다. 그러면 이제 이 성공과 실패에서 무엇이 남는가? 첫째, 그것의 성공은 계승해야 한다. 바로 다수의 의지이다. 이 부분에 관한 한 러시아 혁명의 정당성은 지금도 유효하다. 우리의 촛불도 그것을 확인해준다. 민주주의는 확고한 역사의 방향이고 러시아 혁명은 그 시작이었던 것이다. 둘째, 하지만 그것은 의지와 현실 사이의 간격을 좁히는 데 실패하였고 미완의 과제로 남겨 두었다. 이 부분에서 혁명은 반성되어야 한다. 결국 혁명은 단지 실패했을 뿐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 두 교훈의 해답은 모두 마르크스로 이어진다. 혁명이 제기한 다수의 의지가 마르크스였고 이들이 좌절한 현실과의 간격을 과학으로 정립한 것도 마르크스였기 때문이다. 두 개의 마르크스는 결국 마르크스 자신에게로 귀결되는 것이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이미 우리 곁에 돌아와 있다. ‘마르크스 재장전!’- 1959년 고데스베르크 강령에서 마르크스를 폐기했던 독일 사민당의 기관지가 이번 달 특집으로 내건 제목이다. 이것이 우연일까? 그렇다면 촛불 1주년의 우리에게 마르크스는 무엇일까? 우리에게는 아직 너무 먼 얘기일까? “진리에의 길은 멀고 험하다!” 바로 마르크스의 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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