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박김형준 사진가
구술생애사 <할배의 탄생> 저자 이번 칼럼은 왠지 불길했다. 일요일 오전 마감이니 금요일 오전이면 적어도 주제는 잡혔는데, 이번은 아니었다. 금요일 밤 일단 빈 문서를 열자, 불길의 정체가 확연해졌다. 담배가 없다. 금연 13일차. 예상 못한 복병이다. 천둥 번개 치는 토요일 내내 청소, 빨래, 민어매운탕 끓여 먹기, 신문 샅샅이 읽기, 맨손체조 등등 혼자 별별 짓을 다 하고, 저녁 6시가 돼서야 빈 문서를 다시 열었다.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외길에서 달려드는 놈하고는 맞짱을 뜨는 수밖에. 그러고도 안 써져서 결국 일요일 오전에 마쳤다. 핑계를 대자면 또 아버지다. 큰딸을 양반집 규수에 현모양처로 키우겠다는 아버지와, 아버지를 미워한 힘으로 내 길을 만든 나. 첫 흡연은 대학 1학년인 1976년. 저항이자 숨구멍이었다. ‘아버지는 피워도 되는 담배를 왜 나는 끊어야 하는지 설득시키시면 끊겠다’는 말대답을 하며 고수했다. 41년간의 오만가지 반대와 불편과 불이익에도 불구하고 담배로 인한 모든 폐해는 감수하며 살자는 게, 신조라면 신조였다. 국민건강 운운하며 가난한 흡연자들의 주머니를 더 터는 국가도 알겠고,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시작은 소비를 줄이는 거라는 것도 알겠고, 가난한 살림에 한달 13만원의 담배값은 미련한 소비라는 것도 알겠는데, 다 말뿐이고 욕(慾)이 최우선이었다. 욕(慾)은 허기에서 온다. 내게 흡연은 상처와 혼돈, 자괴와 수치감에서 시작된 일련의 중독증상 중 가장 길게 남은 항목이다. 중독과 열정은 뿌리가 같다. 이십대 초반에 도벽과 식이장애를 떠나, 아버지의 집을 출가한 결혼과 육아로 잠시 잠복기를 거치다가, 자녀에 대한 과한 욕망과 일과 사회운동과 글 등으로 중독 혹은 열정의 목록이 이어진다. 일련의 목록들을 거치며 한편으론 아버지의 질서와 계급을 떠나 독립하는 동안, 담배는 중독에 망가지거나 열정에 타버리지 않게 나를 건져주었다. 한 바퀴 돌아 환갑이 되면서야 방황과 혼돈의 이유를 좀 알겠고, 자괴와 수치를 보듬어 쓸모를 발라내는 중이다. 하여 고통은 공공재라며 네 것 내 것 없이 모아 볕에 널고 있는 요즈음, 담배는 더 이상 핑계도 필요도 신조도 뭣도 아닌 단지 자해다. 목구멍이 아프고 머리가 흐려져도, 뇌와 손가락과 입술이 반복적으로 더듬어 찾는 습(習)일 뿐이다. 작심의 동기는 한달 전쯤 느낀 목구멍의 통증이었다. 타르인지 니코틴인지가 문자 그대로, 몸에 차고 넘쳐 목구멍까지 차올라온 느낌이었다. 뒤집자면 목구멍까지 올라오도록 평생 피울 담배를 다 피워, ‘이제 족하다’ 싶은 느낌. 마침 두 사람을 만났다. 동네 보건소 젊은 의사는 석달에 한번 혈압 약 처방을 받으러 가는 내게 ‘그래도 제가 의사니까 선생님 볼 때마다 금연 얘기는 좀 할게요’라며 죄송하다는 표정으로 늘 담배 얘기를 했다. 작심 직전에 만난 선배 여성 한의사는 늦게 시작한 글을 더 쓰고 죽어야 한다며, 무, 당근, 오이를 담배 개비 모양으로 잘라 수시로 씹어 먹으라는 처방과 함께, 귀침도 놔주고 부항도 떠줬다. 오빠는 상금까지 걸었다. 금연일기를 페이스북과 남매들 카톡 방에 수시로 올리는 등 수선을 떨며 만천하에 공지하는 것은, 내 약함을 익히 알기 때문이다. 허기는 여전히 내 걸림돌이자 디딤돌이다. 담배를 떠나 글로 가고 싶다. 혹 다음번 중독이라면 온전히 중독되기 위하여. 술은 유전적으로 못하고 이제 담배까지 끊으니,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 그대로 현숙(賢淑, 어질 현 맑을 숙)한 여인이 되나 보자. 오늘 가족 모임에서 아버지에게 금연 소식이나 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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