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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칼럼

[한겨레 프리즘] ‘불구속 재판’도 괜찮아 / 석진환

등록 2017-11-28 18:02수정 2017-11-28 21:56

석진환
법조팀장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지난주 구속적부심을 받아 풀려났다. 그의 구속영장이 발부됐을 때 환호했던 수사팀은 망연자실했다. 구속한 김 전 장관을 발판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뻗어가려던 수사팀의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수사팀이 떠안게 된 더 큰 부담은 ‘여론 대응’이다. 수사팀의 숨가쁜 질주가 못마땅했던 보수세력은 일제히 십자포화를 쏘았다. “검찰의 막무가내 구속수사가 법치를 위협한다”(<조선일보>), “김관진 석방은 구속 만능의 ‘인질사법’에 대한 경고”(<중앙일보>)라는 날 선 비난이 쏟아졌다. “망나니 칼춤이 끝나가는 시점”(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이라는, 자극적이지만 수준이 좀 낮아 보이는 공격도 있었다.

큰 수사엔 반드시 이런저런 비판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현재 진행 중인 수사의 정당성을 지지하는 나로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사팀이 묵묵히 제 길을 갔으면 했다. 그런데 견디기 힘들었을까. 27일 수사팀은 과거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의견서 한 장을 냈다. “역사적 경험에 비춰 군의 정치개입은 훨씬 중대하고 가벌성이 높은 범행”이라는 대목이 눈에 들어왔다.

수사팀의 문제의식에 100% 동의했다. ‘대한민국 국군’이 피아를 구분하지 못한 채, 정부에 비판적 의견을 가진 자국민을 ‘적’으로 삼아 작전을 펼친 사건이다. 심각한 반헌법적 범죄다. 김 전 장관은 작전의 책임자였다. ‘과녁을 잃은 총’만큼 위험천만한 존재가 또 있을까. 매일 아침 사이버사의 작전보고서를 전달받고도 불법적 정치개입인 줄 몰랐다는 김 전 장관의 주장은, 그가 모셨던 분의 ‘유체이탈’ 논리를 빼다 박았다.

그렇다고 석방된 김 전 장관을 다시 구치소로 보낼 방법은 없다. 수사팀은 이제 그를 기소하고 법정에서 유죄 입증을 위해 최선을 다하면 된다.

다만 김 전 장관의 구속과 석방을 둘러싸고 벌인 이번 공방이 그저 소모적인 논쟁으로 그치진 않았으면 한다. 피의자 인권 보호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던 보수진영은 이번에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을 내내 강조했다. “유죄 증거가 확실하지 않을 땐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판단하고”, 구속수사도 “수사의 목적 달성을 위한 최소 범위에 그쳐야” 한다는 원칙도 되새김질했다. 새삼 어제 우리의 논리가, 내일 상대방의 논리로 바뀌는 ‘차용’과 ‘변주’의 시대가 됐음을 절감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보수든 진보든 좀 더 일관성을 의식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됐다. 요즘 국민은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검찰도 옛 야당의 전매특허인 ‘정치검찰’, ‘하명·표적 수사’라는 표현을 새 야당이 거리낌 없이 쓰는 상황을 유심히 봤으면 좋겠다. 지금 수사팀이 받는 공격은 지금껏 검찰이 쌓아온 업보 탓이 크다. 오랜 세월 누적된 ‘정치검찰’의 이미지가 너무 또렷하니 누구든 그런 표현을 차용하기가 쉽다. ‘휘어진 칼’을 휘두른 선배들의 멍에를 후배들이 뒤집어쓰는 꼴이지만, 이는 검찰 스스로 오래 노력해 해결해야 할 문제다.

그래서 검찰도 이참에 구속영장에 목매는 등 수사 방식 전반을 점검해볼 필요가 있지 싶다. 최선을 다해 수사했지만 법원이 인정하지 않으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검찰이 서슬 퍼런 기세를 떨치는 시기에 한 발짝 물러서서 성찰해야 그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김 전 장관의 석방도 너무 억울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검찰의 수사 내용대로 국기문란 수준의 반헌법적 범죄라면 더더욱 그렇다. 법원에도 눈 맑고 귀 밝은 판사들이 많다.

soulfa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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