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오피니언 칼럼

[최현숙의 말 쓰기] 엄마의 새해 첫날

등록 2018-01-07 18:07수정 2018-01-07 19:09

  • 가 가 가 가 가
사진 박김형준 사진가
사진 박김형준 사진가
최현숙
구술생애사, <할배의 탄생> 저자

1월1일 엄마가 내려갔다. 정확하게는 엄마를 내려보냈다. 같은 실버타운 2층이고 자식들 걸음으로 1분도 안 되는 거리다. 그럼에도 개인 주거공간에서 24시간 공동 돌봄을 받는 ‘케어홈’으로 옮긴 것은 복귀 불가능한 하강이다. 12월 세 건의 ‘일상’이 이어졌다. 엄마는 아버지와 함께 식당에 가다 주저앉으며 넘어졌고, 이후 감기에 걸려 식사를 마다했다. 사위가 병원에 동행했고, 자식들은 수시로 방문했다.

12월31일 낮, 식당을 가다 다시 넘어졌다. 얼굴에 타박상을 입고, 말도 더 어눌해졌다. 왼쪽 다리에 힘을 주지 못해 식사는 방으로 배달되었고, 방의 화장실도 가지 못했다. 새해 첫날, 20여명의 자손들이 모였다. 첫눈에 케어홈 입주 단계임이 명확했다. 자식들, 남편과 요양보호사 간에 논의가 진퇴를 거듭했다. 그 진퇴마다 실버타운 직원은 가격을 핵심으로 한 깔끔한 답을 내놓았다.

예민해져 있는데다 귀까지 잡순 아버지에게 아들은 위태롭고 적확한 단어를 골라가며 매직펜으로 세세한 필담을 했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아버지에게 처음으로 사용했다. 응. 그래. 알겠다. 엄마의 케어홈 입주를 미루던 아버지도 이번엔 수긍했다. “어쨌든 병원은 절대 안 된다”는 것을 마지노선으로, 엄마가 좋다고 하면 그러라고 했다.

엄마가 좋다고 할 리 없고, 아버지가 그걸 모를 리 없다. 86살의 인지장애증 아내를 수시로 챙기며 나름 돌봄의 몫을 하던 90살의 남편. 아내 나이 여든 넘어까지의 갈등관계를 넘어, 4~5년의 오묘한 애착관계를 지나, 이제 분리단계로 들어가는 거다. 직원에게 ‘지금 일단 입주’를 알렸다. 이중부담에도 개인 공간 사용권과 명패를 당분간 유지하며 케어홈에 가기로 한 것은 “임시”라는 핑계가 두 분에게 유효해서다. 5년 전 실버타운 입주부터 지금까지 모두, 상당히 돈의 덕이다. 많은 빈곤한 노인들에겐 신속한 절차가 가차 없이 진행된다.

‘케어홈’이라는 소리를 듣자 “내 방 보증금이 얼마냐?”며 순간 말짱해지던 엄마는 ‘싫어’를 반복했고, 그 자리에 아버지는 없었다. 딸의 우회적 설명에 넘어간 엄마는 ‘며칠 만이지?’ ‘이 방에 다시 오는 거지?’를 물었고, 자식들은 수락으로 해석했다. 그 애매한 수락조차 헤까닥 취소를 했는데, 딸은 구경이라도 해보자며 달랬다. 엄마는 그 방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케어홈 현관에서 버팅기는 엄마를, 딸은 남들 몰래 손과 팔에 힘을 주어 밀어 넣었다. 먼저 둘러보고 나간 아버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들은 ‘어쨌든 엄마를 혼자 두고 나갈 자신이 없다’며 울먹였고, 딸은 ‘그건 내가 할 테니 다들 적당한 때에 먼저 나가라’고 했다.

5시5분. 다행히 곧 식사 시간이다. 자꾸 현관문 쪽을 돌아보는 엄마. 시선을 막으며 엄마와 현관문 사이에 앉은 딸은 엄마가 좋아하는 가곡 ‘내 고향 남쪽 바다’를 불렀고, 엄마는 금세 따라 부르며 늘 그랬듯 젊어서 죽은 자신의 오빠 이야기로 넘어갔다. 상태가 고만고만한 할머니들이 차례로 둘러앉았고, 딸은 ‘닭띠 엄마에 닭띠 딸인’ 우리 이야기로 신입 인사를 대신했다.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띠에서 태몽으로 건너가자, 딸은 슬쩍 또래 할머니들이 애창하는 일본 노래를 청했다. 이런 날 태몽은 위험한 주제다. 노래가 합창되는 동안 저녁식사가 차려졌고, 딸은 상차림을 돕는 척 일어나 직원에게 ‘이만 가볼게요. 잘 부탁드려요’를 속삭이며 나왔다. 지난 1주일 우여곡절이 이어졌고, 오늘 7일 아버지는 오후 5시에 자식들을 다시 소집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오피니언 많이 보는 기사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1.

윤석열이 연 파시즘의 문, 어떻게 할 것인가? [신진욱의 시선]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2.

“공부 많이 헌 것들이 도둑놈 되드라” [이광이 잡념잡상]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3.

‘단전·단수 쪽지’는 이상민이 봤는데, 소방청장은 어떻게 알았나?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4.

극우 포퓰리즘이 몰려온다 [홍성수 칼럼]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5.

‘영혼의 눈’이 썩으면 뇌도 썩는다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