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1987>에서 박종철 열사가 죽임을 당하는 서울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의 조사실 촬영현장. 영화사 제공.
지난 7일 영화 <1987>을 관람하기 앞서 박종철 열사의 형 박종부씨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책 한권을 선물했다.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가 펴낸 <그대 촛불로 살아>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꽤 나온다. 김학규 사업회 사무국장이 쓴 글에 따르면 31년 전 사건 발생 직후 형을 비롯한 유족들을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로 안내한 대공경찰은 조사 당시 상황을 설명하다 갑자기 책상을 ‘탁’ 쳤다고 한다. “이렇게 했는데 박군이 ‘억’ 하고 쓰러졌다”는 거짓말과 함께.
1987년 2월27일 안상수 검사가 수감 중인 조한경 경위로부터 “범인이 3명 더 있다”는 자백을 듣고 5월18일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이 폭로할 때까지 3개월 가까이 검찰이 수사는커녕 ‘회유’하려 한 정황도 있다. 당시 이부영 민통련 사무처장이 사제단에 보낸 ‘비둘기’(비밀메모)에는 “안 검사는 ‘어느 쪽이 유리한지 잘 알아서 판단하라’는 등 검사로서 해서는 안 되는 말을 하며” 은폐 의도를 드러냈다고 적혀 있다. 안유 영등포교도소 보안계장 등으로부터 검경의 접견 내용을 전해들었던 이부영 당시 처장은 2015년 <한겨레> 인터뷰에서도 안 검사 등이 “회유했다”고 증언했다. 이듬해 1월까지 네차례나 재수사하며 치안본부장까지 경찰 수뇌부가 모두 구속됐으나 당시 은폐를 모의·지시한 안기부장과 법무·내무장관은 물론 지시대로 실행한 검찰 간부들은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8일 자유한국당의 검사 출신 곽상도 의원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은 보수정부에서 밝힌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 과거사위가 당시의 검찰 책임까지 제대로 재조사해야 더이상 이런 망발이 안 나올 것이다.
오는 14일은 박 열사의 31주기다. 기념사업회는 청와대 누리집에서 남영동 인권센터를 경찰 대신 시민사회가 운영하게 해달라는 청원운동을 2월1일까지 벌인다. 경찰 홍보 공간이 아니라 인권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박종철인권기념관’의 탄생을 보고 싶다.
김이택 논설위원 rikim@hani.co.kr